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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12

[인터뷰 공간 짬] 페달을 밟으며 행복을 굴리다

  • 자신만의 속도로 달리는 박찬종 사이클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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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에 열린 제45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세 개의 금메달과 한 개의 은메달을 목에 건 주인공이 있다. 사이클 국가대표 박찬종 선수이다. 그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한 이후, 지난 3년 동안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고 책을 출판했으며,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금메달을 목에 걸다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는 수많은 사이클 선수들이 출전한다. 뇌병변장애인, 절단장애인,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이 참가할 수 있으며, 자전거의 형태 또한 바이시클, 핸드사이클, 트라이시클, 텐덤사이클로 다양하다. 장애 유형도 자전거를 타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지만, 스포츠를 즐기는 마음만큼은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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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대한장애인체육회)


대회를 앞둔 9월 초, 박찬종 선수는 김해로 향했다. 사이클 도로 경기는 실제 현장에서 이루어지기에 그에 맞는 연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코스를 분석하고 전략을 짜며 치밀하게 준비했다.

 

“트랙 경기는 모든 트랙의 조건이 똑같은데, 도로 경기는 달라요. 현장 확인이 중요하죠. 직접 현장에서 최대 페이스로 타면서 동영상을 찍어왔어요. 또 대회 코스와 유사한 도로를 찾아 그 환경에 적응하는 훈련을 했죠. 경사나 길이 등을 고려해서 어느 정도의 힘을 들이고 어떻게 달려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박찬종 선수는 의족을 착용하고 양쪽 다리로 페달을 굴리는 C3 등급으로 참가했다. 그가 출전한 종목은 남자 개인도로독주 15km와 55km, 남자트랙팀 스프린트와 남자트랙개인추발 3km이다. 개인도로독주 15km는 선수 혼자서 출발해서 누가 더 빨리 도착하는지를 겨루는 기록 경기이고, 개인도로독주 55km는 다 같이 출발해서 누가 피니시 라인에 먼저 들어오는가를 다투는 경기이다. 혼자서 달리느냐, 함께 달리느냐에 따라서도 전략이 달라진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사이클 선수로서 저의 강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어요. 저는 자전거를 워낙 오래전부터 타왔기 때문에 자전거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편이에요. 그래서 내리막 코너에서 날카롭게 돌면 쫓아오기 힘들 거라고 판단했어요. 이 구간을 공략해서 선두 그룹에 서기로 마음먹었죠.”

 

모든 선수들이 자기만의 계획을 갖고 대회에 임하기 때문에, 미리 세워둔 전략이 반드시 통하는 것은 아니다. 머릿속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박찬종 선수는 훈련을 거듭한 끝에 스스로에게 자신감과 여유가 생겼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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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체전들은 질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제가 끌려가는 느낌의 경기였어요.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는 훈련을 많이 하고 준비도 되었기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기량이 좋아졌다고 느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서 경기를 치를 수 있었어요. 선수로서 이런 여유는 저도 처음 느껴봤어요.”

 

그 결과 남자 개인도로독주 15km와 55km, 남자트랙팀 스프린트 부문에서 금메달, 남자트랙개인추발 3km 부문에서 은메달을 따는 결과를 얻었다. 올해 3월에 태어난 아이에게 금메달을 보여줄 수 있어서 더욱 기뻤다.



다시 바라보는 순간

박찬종 선수는 20대 때부터 자전거를 즐겨 탔다. 취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찾아보다가 우연히 자전거를 접하게 되었고 그 매력에 빠져 버렸다. 내성적인 성향인 그에게 자전거는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해 주는 존재였다. 이후에는 자전거를 주제로 유튜브 채널도 만들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화학회사 연구원으로 생활하던 2022년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던 길에 뜻밖의 사고가 일어났다. 2차선을 가로질러 온 5톤 트럭 아래에 깔리게 된 것이다. 그는 사고의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트럭 기사가 절규하던 모습, 사랑하는 가족과 여자친구를 못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한 생생하다. 구조된 박찬종 선수는 응급 수술을 받았지만, 며칠 후에 왼쪽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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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에서 응급 수술을 했을 때만 해도 발가락이 움직였거든요. 내 발가락이 멀쩡히 있고 까딱까딱도 할 수 있는데,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니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기능하지 않는 다리로 지내는 것보다는 의족을 사용하는 게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얘기였죠.”

 

이듬해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었기에 사고의 충격은 컸다. 어머니는 병원 생활을 도와주셨고, 현 아내이자 당시 여자친구는 퇴근하고 나면 달려와 그를 간호해주었다. 그 덕분에 박찬종 선수는 슬픔에 빠져 있기보다는 당시 상황을 조금 더 차분히 바라보려고 했다. 이때 일기를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큰 도움이 되었다.

 

“병상에서 일기를 썼던 게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감정에 빠져 있지 않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거든요. 격한 감정을 기록해 놓은 일기를 며칠 뒤에 다시 읽어보면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그날은 참 힘들었는데, 오늘 다시 보니 별일 아니네 싶은 글들이 눈에 띄었죠. 그래서 감정이 요동치더라도 그날 일기를 쓰지 않고 일부러 며칠 뒤에 적는 방식을 택했어요.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훨씬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박찬종 선수는 병상의 기록을 블로그에 올렸고, 이후 출판사를 통해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스스로를 위해 시작했던 글쓰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힘이 되주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다

이후 박찬종 선수는 재활에 매진했다. 의족 보행을 위해 필요한 근육을 발달시키고, 하나의 다리로도 몸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꾸준히 운동했다. 그리고 입원 기간 동안 그가 했던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새 자전거를 구입한 일이다. 그는 환자복을 입은 채로 자전거에 올라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고, 큰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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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박찬종 선수 인스타그램)


“처음에는 아내에게 자전거 용품을 다 버려달라고 얘기했어요.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가 났기에 이제 자전거와는 당연히 끝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그건 계속 나한테서 사고의 원인을 찾는 셈이 되더라고요. ‘그날 자전거 타지 말걸’, ‘아예 자전거를 시작하지 말걸’하고 말이에요. 과거의 나를 부정하게 되는 결과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돌이켜보니 지난 10년 동안 아무 사고 없이 자전거를 탔고, 자전거가 있었기에 더 많은 행복을 느껴왔다. 자전거로 얻게 된 경험과 알게 된 사람들, 마음에 새긴 아름다운 추억들이 더 많았다. 그는 과거를 부정하고 싶지 않았고,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었다.

 

“자전거 유튜버로서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갑자기 사고가 나서 사라져 버리면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기억할까 생각해 봤어요. 좀 더 나은 마무리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시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마음먹고, 사고 88일째 되던 날 병원으로 새 자전거를 배송시켰죠.”

 

다시 자전거를 타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의족에 적응하는 일이었다. 박찬종 선수는 퇴원 후 의족을 맞추었고, 사고 112일째 되던 날에는 의족을 차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후 국가대표 감독과 인연이 닿아 선수 제의를 받고, UCI(국제사이클연맹)가 주관하는 패러사이클링 월드컵 경기에 출전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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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감독님이 제게 목표가 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패럴림픽에 나가는 거라고 답했죠. 그랬더니 패럴림픽에 나가려면 국제 등급을 받아야 한다면서, 3주 뒤에 벨기에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 출전해 보라고 권유하시더라고요. 의족을 착용한 채로 자전거를 타는 게 익숙하지도 않았을 때였지만, 그래도 도전해 보기로 했죠. 저에게는 잊지 못할 첫 대회였어요.”

 

UCI 패러사이클링 월드컵은 패럴림픽보다 더 많은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이다. 패럴림픽 출전 티켓을 따기 위해서 선수들이 참가하기 때문이다. 첫 대회부터 국제 대회에 출전하고, 유명한 세계 선수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보는 기회였기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영상으로만 보았던 선수들을 직접 만나게 되니 정말 신기했어요. 그들과 같은 대회에 출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이었고요. 선수들에게 찾아가서 ‘병원에서 당신 영상을 보면서 영감을 얻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얘기했죠. 선수들도 굉장히 좋아했어요. 사이클 선수로서 첫발을 내디딘 대회인데, 저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경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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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박찬종 선수는 전국 대회에 출전해 메달을 휩쓸었다. 전국장애인체육대회는 물론이고 양양 국제사이클대회와 전국사이클선수권대회에서도 순위권에 들었다. 또한 올해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고, 11월에 열린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는 전 패럴림픽 메달리스트인 진용식 선수를 제치고 1위의 자리에 올랐다. 진용식 선수는 국제무대에서 우수한 기량을 뽐내던 장애인 사이클계의 전설이기에 의미가 더욱 컸다.



자전거용 의족을 만들다

박찬종 선수는 현재 자전거를 타기에 적합하도록 개조한 의족을 착용한다. 자전거용 의족이 따로 없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의족으로 훈련을 시작했다가 의족이 흘러내려 난감했던 경험을 한 뒤, 의족 회사와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일반 보행용 의족에 자전거 신발을 신겨서 페달을 밟으려고 했는데, 자전거를 타기에는 충분히 구부려지지 않더라고요. 이걸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달리기용 의족 무릎에 봉을 이어 바로 페달에 결착될 수 있게 했어요. 창의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서 세상에 없던 자전거용 의족을 만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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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C영상미디어)


그렇게 의족을 만들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경량화할 방법을 생각했고 소재를 연구했다. 물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의족 회사의 도움이 뒷받침되었다. 자전거 전문가는 의족을 잘 모르고, 의족 전문가는 자전거를 잘 모르기에 함께 의논하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1.5kg이었던 의족을 현재 700g으로 줄였고, 앞으로는 400g까지 줄여볼 생각이다. 그리고 경량화된 의족을 착용하고 한국 신기록에 도전해 볼 것이다. 박찬종 선수는 그렇게 보행용 의족과 자전거용 의족, 두 개의 의족을 오가며 생활한다.

 

“제 SNS를 통해서 의족에 대해 문의해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의족이 사회적 활동성을 정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아직 젊고 활동을 많이 할 수 있는데 무겁고 불편한 의족을 한다면, 내 활동의 범위가 의족의 수준에 맞춰져 버려요. 그 의족을 사용하는 동안 뛰지도 못하고 천천히 걷는 정도로만 생활하게 되죠. 나중에 의족을 새로 맞추더라도 선뜻 활동적인 의족을 선택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의족을 맞추기 전에 반드시 내 활동 범위를 생각해 봐야 해요.”

 

그는 최첨단 기술의 시대에도 여전히 나무로 만든 무거운 의족을 착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5년마다 270만 원 정도를 절단장애인에게 지원해 주지만, 그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의족은 서 있거나 천천히 걷는 정도의 생활밖에는 할 수 없다. 절단 장애인 대부분이 구체적인 정보가 없는 채로 의족을 맞추며, 활동성이 부족한 의족을 착용한 채로 생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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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제가 걷는 걸 보고 절단장애인에 대해서, 또 의족에 대해 알아가면 좋겠어요. 혹여 나중에 사고를 당해 절단을 하게 되더라도 저를 떠올리면서 ‘잘 걷는 사람이 있던데’ 생각한다면, 의족을 선택할 때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게 제 바람입니다.”



계속해서 하고 싶은 일

전국장애인체육대회를 마친 박찬종 선수는 요즘 육아에 공을 들이고 있다. 또 언젠가는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후퍼가 많은 영감을 주었다.

 

“제임스 후퍼가 20개월 딸을 데리고 파타고니아에 다녀왔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길 듣고서 나도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여행할 수 있는 아빠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대단한 곳이 아니더라도 아이와 둘이 다녀올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거예요.”


선수로서의 목표는 내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그리고 2028년에 열릴 LA패럴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뜨겁게 선수 생활한 뒤에는 다시 취미로서 자전거를 타는 것이 또 하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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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로서 자전거를 타는 것과 취미로 자전거를 타는 건 정말 달라요. 지금은 선수이기에 주 6일 혼자서 자전거를 타면서 훈련해요. 그런데 취미로 타면 동호회 사람들과 자전거도 타고 중간에 커피도 마시며 조금 더 여유를 즐길 수 있죠. 저는 취미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종종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를 겪고 다시 자전거 탈 생각을 하냐고 묻곤 하는데, 이렇게 큰 사고를 겪고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게 저에게는 정말 중요하거든요. 취미가 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계속하고 싶은 취미가 있다면, 삶이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박찬종 선수는 사이클 국가대표이자 에세이 작가, 크리에이터로서 자신의 경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나누고 있다. 누군가는 슬픔에 빠져 포기하고 말았을 일들을 그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오늘도 박찬종 선수는 페달을 밟는다. 오직 자신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오늘의 행복을 위해 바퀴를 굴린다.


기획 : 김주현, 남궁소담

사진 : 홍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