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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19

[인터뷰 공간 짬] 그라운드를 넘어 ‘소통의 다리’ 놓다

  •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수어 아티스트, 후지모토 사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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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뜨거운 열정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방송인 후지모토 사오리. 그에게는 ‘FC 월드클라쓰의 주장’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또 하나의 정체성이 존재한다. 바로 ‘수어 아티스트’라는 이름이다. 사오리는 농인과 청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오늘도 새로운 도전을 한다.

 

 

‘골때녀’의 열정 스트라이커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간판 스트라이커로 활약 중인 사오리는 작은 체구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힘으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멤버이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진통제를 맞고 경기를 뛰며 골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시청자들을 감동을 준다.

 

“골때녀에 출연하면서 처음으로 축구를 하게 되었어요. 축구는 저를 계속 도전하게 하고 성장하게 만들어요. 힘들 때도 있지만 그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죠.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 중 하나가 축구예요.”

 

‘FC 월드클라쓰’는 주장인 일본인 사오리를 중심으로 프랑스, 멕시코, 콜롬비아, 호주 등 다국적 선수들이 함께하는 팀이다. 다양한 국적의 멤버들이 모여 있다 보니 서로의 언어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같은 상황을 두고 일본어로는 어떻게 표현하는지, 프랑스에서는 뭐라고 말하는지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멤버들이 소통하는 또 하나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바로 ‘한국 수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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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골 때리는 그녀들)


“우리 팀멤버들에게 제가 한국 수어 몇 마디를 알려주었어요. 그러다 보니 축구 경기를 할 때도 수어로 소통할 때가 있어요. 세트피스 상황에서 수어로 신호를 보내기도 하고, 경기 중에 ‘집중해’ ‘정신 차려!’ 이렇게 수어로 표현하기도 해요. 그러면 멤버들도 알아듣고 한마음으로 움직이죠.”

 

  * 세트피스(Set Piece) : 축구 경기 중 경기가 정지된 후 재개되는 플레이를 의미함

 

멤버들이 한국 수어에 눈뜬 건, 사오리 덕분이다. 외국인 최초로 수어통역사 필기시험에 합격한 바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에 더해 한국 수어까지 익혀서 국가공인 시험에 합격했다는 점이 놀랍다. ‘열정’과 ‘투혼’은 사오리라는 사람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수식어다.

 

 

수어를 배우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다

사오리가 한국 수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다. 당시 평창동계올림픽 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활동하면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경기하는 장애인 선수들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또한 현장에서 농인 분들을 위한 수어 통역을 보고 수어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걸 처음 알게 되고, 한국 수어에 관심이 생겼다.

 

“한국 수어를 배우겠다고 결심한 뒤에 혼자서 책도 사보고 관련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언어를 배우는 일이다 보니, 혼자서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수어전문교육원 입문반에 들어갔는데, 수업을 받으러 간 첫날을 지금도 잊지 못해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거든요.”

 

낯선 한국 땅에서 수어를 배우기 위해 교육원을 찾은 첫날. 사오리는 건물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혼자서 수어를 배우려니 조금 부끄럽기도 했던 터. 하지만 계단을 올라가 용기를 내어 교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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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업이었는데 농인 선생님이 들어오셨어요. 저는 수어를 잘 모르는 상태인데 바로 수어로 인사를 건네시더군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선생님이 밝은 표정과 몸짓으로, 정말 온몸으로 수어를 표현하고 알려주셨거든요. 그 순간 수어의 매력에 빠져버렸죠.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것을 넘어서 농인들의 문화, 그러니까 농문화라는 걸 처음 알았고 더 잘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수어를 알면 알수록 어설프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자신이 선택한 일은 해내고야 말겠다는 승부욕이 그를 움직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원에서 지내며 공부했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 주변 독서실이 문을 닫을 때는 집을 독서실처럼 꾸며놓고 공부를 이어갔다. 이때만큼은 방송 출연 제의도 마다하고 수어 공부를 최우선에 놓고 임했다. 그 결과 필기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수어는 단순히 손으로만 하는 게 아니에요. 표정, 몸의 방향, 시선, 공간 등을 활용해서 의사소통하는 것, 이런 점들이 저에게 정말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농인이라고 하면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분들을 뜻해요. 교육원에 다니면서 선생님을 비롯해 농인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일본 사람이 한국 수어를 배운다고 하니 신기해하더군요. 그분들과 교류하면서 저는 더 많은 분이 수어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수어 아티스트, 수어통역사와는 달라

수어통역사 필기시험에 합격했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단지 수어 통역만은 아니었다. 수어를 통역하여 농인들이 소통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창의적인 방법으로 수어의 세계를 넓히고 싶었다. 수어라는 도구로 농인과 청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때 수어 노래를 배워요. 대표적인 노래가 몇 곡 있죠. 그 덕분인지 저 역시도 음악과 수어를 연결해서 떠올리게 되었어요. 수어를 사용해 창작하는 나의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이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수어 아티스트’라고 이름 지었어요. 지금은 수어 아티스트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당시에는 그러한 명칭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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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KBS ‘불후의 명곡’)


수어통역사와 수어 아티스트가 하는 일은 다르다.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 수어통역사는 가사의 내용을 수어로 전달하는 한편, 수어 아티스트인 사오리는 노래를 재해석해서 수어에 안무를 곁들여 새롭게 선보인다. 그 표현 과정에서 아티스트로서의 고민과 철학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수어 아티스트는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수어를 활용해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색소포니스트 대니정 님과 작업한 적이 있어요. 그분의 ‘Dreams Of Heaven’이라는 곡을 수어로 표현한 것이에요. 음악이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가사가 없었기에 뮤지션의 메시지를 조금 더 듣고 싶었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곡을 만들었다고 해서 음악이 주는 느낌과 뮤지션이 표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더하여 제 나름대로 작사를 했어요. 그리고 리듬을 몸으로 표현하면서 수어로 전달했어요.”

 

농인은 가사가 없으면 노래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수어 아티스트는 들리지 않는 노래를 손짓과 몸짓으로 보이게 만들어준다. 원작자의 곡이 사오리라는 아티스트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그래서 수어 아티스트의 작업은 예술이다. 수어로 표현한 작품 중 사오리에게 가장 의미가 있는 곡은 BTS(방탄소년단)의 ‘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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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하이브)


“BTS의 ‘ON’은 제가 처음으로 혼자서 도전한 곡이었어요. 그전까지는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아티스트 그룹인 ‘한글팀’ 멤버들과 함께 활동했는데, 혼자서 보여드린 첫 번째 작품이었거든요. 농인 분들도, 전 세계 아미(BTS 팬클럽) 분들도 뭔가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을 좋게 봐주셨어요. 첫 작업이어서 지금 봤을 때는 수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고 완성도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저에게는 정말 의미 있는 곡이에요.”

 

 

수어 덕분에 도전하게 된 일들

수어 아티스트의 활동은 다방면으로 확장 중이다. 얼마 전 사오리는 뮤지컬 <해피 오! 해피>의 배우들에게 수어를 지도했다. 뮤지컬 삽입곡 중 일부에 수어를 활용한 안무를 도입한 것이다. 여기에 수어 아티스트 사오리의 아이디어가 반영되었다.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수어 안무를 함께하는 시도였다.


“뮤지컬의 엔딩 곡을 수어로 표현하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같이 작업하게 되었어요. 정말 반가운 제안이었죠. 대중적으로 만든 뮤지컬에 수어가 들어간다는 점이 의미 있게 다가왔어요. 인식 개선을 위한 작품이라고 하면 관객들도 한정적이에요. 하지만 대중적인 작품에서 수어를 녹여 표현하면 자연스럽게 수어를 소개할 수 있고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즐길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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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작곡에도 관심이 생겨서 도전 중이다. 그동안에는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재창작하는 일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수어로 표현하고 공연도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작곡과 작사를 배우는 등 음악 공부도 열심이다.

 

“수어를 통해 정말 많은 일을 새롭게 배우고 도전하게 되었어요. 수어에서는 표정이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거울을 보면서 표정 연습을 참 많이 했어요. 수어 아티스트로서 제가 만든 곡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음악 공부도 했죠. 작품을 만들 때 춤도 같이하기 때문에 안무가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기도 해요. 이런 모든 작업이 저에게는 소통의 한 방법이에요.”



농인이든 청인이든, ‘골때녀’ 보며 응원하는 마음은 같아

일본인이 한국에 와 한국어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수어를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수어 활동을 펼쳐나간다는 점이 정말 특별하게 느껴진다. 특히 농인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모두가 함께 즐기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갖게 된 배경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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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한국이 외국이잖아요. 제가 살던 나라를 떠나 한국에 와서 낯선 문화를 만났죠. 지금은 한국어를 할 수 있어서 많은 기회를 얻었지만,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봐요.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언어가 통하지 않고 문화를 잘 몰라 어려움을 겪듯이, 농인도 청인과 수어로 소통이 어렵고 문화가 달라서 소외감을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농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어요.”

 

수어를 접하면서 사오리는 장애인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기에 장애에 대해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농인들과 교류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느낄 때가 많다고 얘기한다.

 

농인이든 청인이든 ‘골때녀’ 멤버들의 축구를 보며 열광하고 응원하듯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마음은 같다. 다만 서로의 문화를 낯설게 생각하거나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오리는 서로를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일본인으로서 한국 땅에 와서 느낀 감정들, 농인을 만난 뒤 새롭게 알게 된 세상이 사오리를 수어 아티스트의 길로 이끌었다.



독립된 언어, 한국 수어

매년 9월 23일은 세계 수어의 날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념되는 날로 수어의 언어적 가치와 농인의 권리를 알리기 위해 유엔이 지정했다. 수어는 세계 공통어가 아니다. 음성언어가 그렇듯이 수어 또한 나라마다 다르다. 세계에는 157개 이상의 다양한 수어가 존재하며, 각국의 문화에 따라 고유한 특징을 지닌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수어가 공식 언어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과거 “손으로 언어를 구성해서 대화한다”는 의미로 ‘수화’라고 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독립된 언어”라는 의미로 ‘수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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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니 언어 또한 다르죠. 수어 또한 마찬가지예요. 다만 한국과 일본은 이웃 나라이다 보니 일부 동작이 비슷한 경우도 있다고 해요. 한국어, 일본어가 그렇듯이 한국 수어, 일본 수화 또한 독립된 언어예요. 각각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 돼요.”

 

모든 언어가 그렇듯 한국 수어도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젊은 세대가 사용하는 수어와 노년 세대가 사용하는 수어는 같지만 다르다. 젊은 청인들이 줄임말을 많이 사용하고 유행어를 발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젊은 농인 또한 새로운 언어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수어를 더 간소화해서 표현하는 경우도 있어요. 새로운 개념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수어가 생겨나기도 하죠. 예를 들어 SNS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각각을 일컫는 수어가 생겨나기도 하고, 각자가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면서 소통하기도 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서로의 수어를 몰라도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수어로 대화하면 정확한 뜻을 몰라도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느낌이 오죠.”



선한 영향력으로 모두가 함께 즐기는 콘텐츠 만들 것

사오리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수어 단어는 ‘할 수 있다’이다. 손바닥을 모아서 입 앞에서 댔다가 ‘파-’하고 공기를 뱉어내며 바깥쪽으로 밀어내듯 표현하는 동작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하는 단어라 ‘골때녀’ 멤버들과도 자주 사용한다. 단순한 표현이지만 힘을 불어넣는 느낌이 든다. 후지모토 사오리라는 사람을 그대로 담아낸 듯한 수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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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선한 영향력을 드리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항상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수어를 통해서 또 축구를 통해서 많은 분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드리고 싶어요. 수어를 더 널리 알리고, 모두가 함께 즐기며 하나가 되는 콘텐츠를 만들며 수어 아티스트로서 당당히 서고 싶어요. 행복한 마음으로 하나씩 이루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격력, 그래서 <골 때리는 그녀들>의 팬들은 그를 ‘투지의 아이콘’이라 부른다. 사오리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 세상의 문을 두드린다. 모두가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그를 응원한다.



기획 : 김주현, 남궁소담

사진 : 홍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