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 스튜디오에 불이 켜지면, 카메라 앞에서 시청자에게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앵커의 모습이다. 그런데 최근 KBS ‘뉴스12’의 생활뉴스 코너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국내 최초의 청각장애인 앵커가 된 노희지 씨다. 생방송 무대에 서 있다는 것이 아직은 꿈만 같다고 이야기하는 노희지 앵커는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을 믿도록 돕고 싶다”라고 말한다.
지난 5월 방송 시작한 ‘새내기 앵커’
노희지 앵커는 2025년 5월 7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새내기 앵커로, KBS ‘뉴스12’의 생활뉴스 코너를 진행한다. 12시 50분부터 1시까지,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전국에 생방송으로 송출되는 뉴스다. 생방송을 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떨리는 일일 텐데도 뉴스를 진행하는 노희지 앵커에게서는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만의 특별한 마인드 컨트롤 방법 덕분이다.
“처음 뉴스에 투입되었을 때는 정말 심장이 요동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회차를 거듭하다 보니 떨림의 빈도수가 조금씩 줄어들었죠. 긴장이 겉으로 드러나면 방송 사고가 될 수 있으니, 열심히 마인드 컨드롤을 하고 있어요. 지금 이 무대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다’라는 생각으로요.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지켜봐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KBS는 2011년부터 장애인 앵커를 선발해왔다. 1기 시각장애인 이창훈 앵커로 시작하여, 모두 7명의 앵커들이 뉴스를 진행했다. 노희지 앵커는 8기 장애인 앵커로 선발되었다.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앵커는 있었지만, 청각장애인 앵커는 이번이 처음이다. 청각장애의 특성상 뉴스 전달에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희지 앵커는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노력하며 발화 능력을 발전시켜왔기에 장애인 앵커로 선발될 수 있었다.
“선천적으로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그러다 보니 부모님께서 어렸을 때부터 언어 치료를 받게 하셨어요. 막대기를 입에 물고 혀의 위치를 교정하고, 입술 모양을 외웠죠. 배에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까지도 연습하고, 발음이 안 되면 될 때까지 했어요. 3~4살 때부터 10살 때까지 정말 열심히 했어요.”
혹독하게 언어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노희지 앵커에게는 인생의 한 문장이 생겼다. 바로 “no pain, no gain”, 즉 ‘고통 없이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치료받는 동안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자세와 목표한 것을 끝까지 이루어내는 근성이 길러졌다고 노희지 앵커는 말한다.
‘목소리가 좋다’는 칭찬 한마디
미디어에 관심이 많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지만, 학업을 이어가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전공의 특성상 공동작업하는 과제가 많았는데, 청각장애로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면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사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제가 청각장애가 있다는 걸 드러내지 못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속기사 지원도 받지 않고 동기들에게도 저의 어려움을 얘기하지 못했죠. 그러다 보니 오해가 생겨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시기였어요.”
노희지 앵커는 청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에 다니지 않고,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일반 학교에서 공부했다. 청각장애는 외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데다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발화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먼저 밝히지 않으면 상대방이 장애를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로 인해 생기는 오해들은 모두 노희지 앵커가 감당할 몫으로 남았다. 때로는 상처받고 숨죽여 울어야 했던 시간도 있었다.
“정말 친한 지인들 빼고는 제가 청각장애가 있다는 걸 모르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왜 장애를 숨기고 살아야 되는 걸까? 하고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도 저는 청각장애가 있다는 게 부끄러웠거든요. 그게 정말 솔직한 심정이었어요. 그런데 속기사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하게 되었어요.”
속기사는 청각장애를 가진 대학생의 학습 지원을 위해 수업의 전체적인 내용을 기록한다. 이 속기록을 통해 청각장애 대학생은 수업 내용을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노희지 앵커는 속기사 분들 덕분에 높은 학점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특히 “목소리가 좋다”는 칭찬은 큰 힘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발음이 어눌하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말을 듣곤 했는데, 속기사 분이 제 목소리가 좋다고 칭찬해 주시는 거예요. 그 말씀에 용기가 났어요. 그리고 꿈을 꾸게 되었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이에요. 이후 앵커가 되기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어요.”
수많은 ‘도움’이 오늘의 나 만들어
돌아보면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노희지 앵커는 이야기한다.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준 언어 치료 선생님,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준 속기사님, 그리고 다양한 매체에서 멋지게 활동하는 장애인 크리에이터들이 노희지 앵커에게 응원이 되었다.
“다운증후군 정은혜 배우, 청각장애 아이돌 빅오션 등 그분들의 도전을 보면서 용기를 얻기도 했어요. 장애와 관계없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장애인 앵커에 도전한 건 저에게는 일종의 커밍아웃과 같은 일이었어요. 그동안 청각장애를 드러내지 않고 살아왔지만, 이번 기회에 제대로 저의 정체성을 세상에 말하게 된 거죠.”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준비했지만, 첫 도전이었기에 단번에 합격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이 선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기뻤고, 온 가족의 뜨거운 축하를 받았다.
“사실 제 동생도 청각장애가 있어요. 그래서 늘 동생에게 떳떳한 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죠. 합격 소식을 들은 동생이 ‘언니 자랑스러워!’라고 얘기해 주었을 때 가장 좋았어요. 가족들의 과분한 응원을 받았는데 보답할 수 있어 감사했죠.”
하지만 합격의 기쁨도 잠시, 예상하지 못했던 벽을 또 한 번 맞닥뜨리게 되었다. 방송에 투입되기 전 교육받는 기간에 일어났던 일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것이 돌발성 난청을 불러오고 말았다. 이 일로 앵커라는 꿈을 포기할 위기에 처했다.
“합격 이후 방송을 연습하고 훈련하는 기간이 있었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했는데 그게 몸에 무리가 되었나 봐요. 뉴스를 진행할 때 PD님의 지시를 듣는 인이어 장치를 착용하는데요. 저는 볼륨을 최대로 키워서 듣는데, 갑자기 돌발성 난청이 와서 소리가 전혀 안 들리는 거예요. 제 건강도 걱정이었지만, 사실 방송에 차질이 생길까 봐 걱정되었어요.”
노희지 앵커는 방송에 피해가 될 것을 걱정하여 앵커라는 자리를 포기할 각오로 담당 팀장에게 얘기했다. 그런데 오히려 “상황이 나아질 테니 기다려보자”라는 격려를 받았다. 공영방송의 앵커라는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짊어진 후배를 따뜻하게 응원한 것이다. 이에 노희지 앵커는 푹 쉬며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한 덕분에 돌발성 난청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예정대로 방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따뜻한 믿음과 격려가 청각장애인 앵커를 탄생시킨 것이다.
앵커의 하루
매일 뉴스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노희지 앵커는 일정한 루틴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방송을 마치는 오후 1시까지, 메이크업 등 외적인 준비는 물론이고, 앵커 멘트 작성과 원고 리딩을 하며 뉴스를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뉴스를 마친 뒤에도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훈련할 정도로 더 좋은 앵커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앵커로서 가장 중요한 건 ‘잘 전달하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원고를 받으면 내용을 자세히 읽고 파악하죠. 잘 이해해야 잘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그다음에는 앵커 멘트를 작성하고, 소리 내어 읽으면서 연습해요. 장단음을 분석하고, 발음이 잘 안되는 단어가 있으면 발음하기 쉬운 단어로 수정하기도 해요. 제가 청각장애가 있어서 잠깐 집중을 놓치면 발음이 어눌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내용을 녹음해서 듣고 연습하는 그 과정을 반복해요.”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한 뒤, 12시 30분부터 스튜디오에 들어가 대기한다. 이후 12시 50분부터 방송을 시작한다. 노희지 앵커의 목소리가 전국으로 송출되는 시간이다. 노희지 앵커는 단순히 원고만 읽는 게 아니라 내용을 온전히 이해해야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 이슈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확인한다. 또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초등학생 때 1기 장애인 앵커인 이창훈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을 TV에서 봤던 게 기억나는데요. 엄마가 ‘시각장애인 앵커가 있대!’하고 말씀하셨거든요. 많은 장애인 앵커 선배님들이 자기만의 색깔로 뉴스의 품격을 잃지 않고 진행해 오셨다는 점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앵커 선배 중에서도 7기 허우령 앵커와는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방송 준비를 철저히 하는 모습과 문제 상황에 완벽하게 대비하는 모습에 감탄했다고 한다. 선배 앵커와의 만남은 더 열심히 잘하고 싶다는 각오를 새기게 해주었다.
“만약 저와 같은 청각장애를 가진 분이 앵커를 꿈꾼다고 하면, 솔직히 쉽게 추천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장애 특성상 워낙 힘든 길이니까요. 그럼에도 앵커의 길을 걷고 싶다면, 나 자신을 믿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뿐이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죠. 한계를 함부로 두지 말고 자기 자신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고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계속해서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꿈은 이루어진다고 믿어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 전하고파
노희지 앵커에게 말하기와 듣기, 그러니까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말’을 배우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에 노희지 앵커에게 ‘말’은 소중함, 그 자체이다.
“저의 경우에는 정말 힘들게 언어 치료를 받으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요. 그러다 보니 말이라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많은 말들이 의미 없이 흘려보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 더 많은 분이 말의 가치와 소중함을 되새기고, 말의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노희지 앵커는 앞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갖는 앵커가 되는 게 목표이다. 현재는 내용을 잘 전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서 뉴스를 진행하지만,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것을 과제로 삼아 나아갈 것이다.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더 널리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올해 11월에 일본에서 데플림픽이 열리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데플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분들을 인터뷰하고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진행해보고 싶어요. 사실 데플림픽이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데플림픽은 청각장애인이 참가하는 세계 스포츠 대회예요. 이처럼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 데플림픽(Deaflympic) : 4년마다 개최되는 청각장애인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로 2025년 11월 일본에서 개최 예정
또한, 노희지 앵커는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을 믿도록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청각장애인인 자신이 뉴스 앵커가 되었듯이, 스스로의 삶을 한정 짓지 말고 가능성을 믿고 도전해 보라고 말이다. 앞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면서 진심을 다해 뉴스를 진행할 것이다.
노희지 앵커에게 도전의 원동력이 되어준 것은 6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었다. 같은 장애를 가진 동생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노력해온 길이었다. 그 덕분에 노희지 앵커는 수많은 꿈을 현실로 이루어냈다.
이제 그녀는 새로운 인생의 무대에 섰다. 공영방송에서 수많은 시청자에게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희망과 응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자리다. 오늘도 생방송 스튜디오에 불이 들어오고, 노희지 앵커는 차분한 목소리로 뉴스를 전한다. 그녀의 뉴스는 그저 ‘가능성’이라는 이름에 머물러 있을 수많은 사람의 꿈을 키워가게 하는 아름다운 도전이다.
기획 : 김주현, 남궁소담
사진 : 홍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