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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25

[플레이리스트] <톡이나 할까?>와 이길보라의 책 『당신을 이어 말한다』

  • 카카오 M. 권성민 PD의 토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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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톡이나 할까?>는 카카오TV에서 만들고 방송한 토크쇼다. 2020년 9월에 첫 방송을 시작해 1년 두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65명의 게스트와 진행자 김이나 씨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다른 토크쇼와는 눈에 띄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모든 대화를 ‘카카오톡’으로 나눈다는 사실이다.


말로 대화할 때와 달리 자신의 이야기를 글자로 표현하려면, 내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좀 더 정확하게 정리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출연자들은 입력창에 문장을 썼다 지웠다 하는 동안 작은 숨소리, 사소한 입매나 눈동자의 움직임까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앞에 있는데 왜 굳이 카톡으로 하냐’ 며 답답해하는 시청자들도 더러 있지만, 그만큼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모습이 우리가 익숙하게 느껴온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말하기라는 사실이다.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에서는 기존의 방송에서는 비교적 다루어지지 않았던 이야기들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성언어와는 체계가 본질적으로 다른 수어가 제 1언어다보니 문장을 구사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랐던 윗세대 농인들과 달리, 시대가 변하면서 젊은 농인들은 점점 더 문자언어도 수어 못지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2020년 12월 출연했던 국민토끼 ‘베니’의 작가 구경선 씨는 “이 프로그램이라면 나도 다른 게스트들과 동등한 입장으로 출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섭외에 응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미팅 자리에서 제작진은 그와 나눈 카톡 대화에서 청인들과 특별히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 대화창 속에서 농인과 청인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그렇다면 이 두 세계 사이의 교감을 좀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게스트도 출연하면 어떨까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 저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길보라 감독은,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 즉 코다CODA로서 두 세계를 이어나가는 작업을 하는 만큼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나는 손으로 옹알이를 했다. 음성언어가 아닌, 수어가 나의 모어 였고 부모의 문화인 농문화가 나의 성장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부모를 귀머거리라 부르며 혀를 쯧쯧 찼다. 그 말을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던 나는 살아남기를 택했다. 부모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착한 장애인’이 되었듯 나 역시 ‘착한 장애인의 딸’이 되었다.” - 이길보라, 『당신을 이어 말한다』 54쪽.



수어와 음성언어 두 가지를 모두 자유롭게 구사하는 이길보라 감독은 <톡이나 할까?>의 문자 대화 속에서도 여러 방식의 말하기와 이를 통해 볼 수 있는 세상의 더 넓은 결에 대해 들려주었다. 수어가 어떤 언어인지, 수어로 말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지에 대해 누구보다 정확하게, 또 누구보다 청인의 입장에서도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당신을 이어 말한다』에서 이길보라 감독은, “미국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프랑스 사람을 만나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미국인과 프랑스인에게는 묻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농인에게는 농인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고. 아마 감독 본인은 코다로서 서로 다른 세계를 오가는 일에 익숙하고 대범해져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 대부분은 미국인에게도, 프랑스인에게도 무엇이 실례이고 무엇이 호감을 사는 행동인지 묻는다. 다른 문화권에서 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한 질문은 사실 흔하게 만나는 이야기다. 두렵고 낯설기 때문이다. 내가 익숙하게 살아온 것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무례하거나 바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농인에 대한 질문보다 미국과 프랑스에 대한 질문이 부쩍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가 과거보다 미국과 프랑스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되고 외국을 다루는 미디어는 점점 늘어왔다. 이제 미국과 프랑스에 대해서는 미국인과 프랑스인에게 직접 묻지 않아도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많다. 더 자주 보고 만나는 것. 어쩌면 그 차이가 가장 크지 않을까. 농인들과 더 자주, 당연하게 만나는 세상이라면 감독이 책 속에서 언급한 질문들도 조금씩 사라지게 될 것이다. 청인인 내가 <톡이나 할까?>를 만들며 수어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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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이어 말한다』는 농인의 세계와 권리에 대해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주류 세계 속에서 충분한 발언권을 얻지 못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에 대해 차근차근 언급한다. 책의 제목처럼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고, 선언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말할 때 그 목소리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겠다고 외친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가 이어나가려는 어떤 말들과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더 큰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김이나 씨는 이길보라 감독과 자신이 하는 일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하늘에 조명을 쏘는 일”인 것은 비슷하다고 말한다. 누군가 조명을 쏘아 올리면 그걸 보고 혼자라 생각했던 이들이 조명 아래 모일 수 있게 된다고. 글과 영화로 끊임없이 조명을 쏘아 올리는 이길보라 감독의 책 『당신을 이어 말한다』에서, 우리는 각자가 건네받을 수 있는 배턴을 찾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서로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이어달리기가 언젠가는 마음 놓고 완주의 숨을 돌릴 수 있게 되길.




글. 권성민 PD(카카오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