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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25

[플레이리스트] 평균이거나 특별함에 집중하는 드라마와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만났을 때?

  • 백수정 대중문화 비평활동가가 이야기하는 미디어가 나아갈 방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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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장애를 가진 캐릭터의 만남 과연 잘못된 만남일까?’, 아니면 ‘좋은 파트너일까?’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던 의문을 정리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이 글의 제목을 ‘여자와 남자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명제를 유쾌하면서도 진중하게 풀어낸 영화<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를 차용해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드라마는 평범함에 조명을 들이대지 않는다


2021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드라마 속 장애를 가진 캐릭터는 다양한 장르에서 크고 작은 역할로 등장했다. 언뜻 생각나는 캐릭터만 해도 <괴물>의 강진묵을 비롯해, <무브 투 헤븐>의 한그루, <악마 판사>의 엘리야, <지리산>의 서이강, 그리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간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환자의 어린 아들 등이다.


이렇게 예전보다 드라마 속 장애를 가진 캐릭터는 다양해졌고 빈번해졌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다양함을 거부감 없이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고, 다양한 욕구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활동과 목소리가 활발해져 힘을 발휘하는 것일 수 있다.그러나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모습에 편견과 부정적인 것들이 가득 담겨 있다면? 그래서 왜곡되고 잘못된 정보를 얻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만남이다. 


원인은 미디어, 특히 드라마는 평범함에 조명을 들이대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 속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현실보다 특별하고, 천재적이며 좀 더 기구하고, 착하고, 순수한 인물로 설정된다. 장애 당사자들이 드라마 속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 둘의 만남과 관계의 지점들을 짚어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고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편견과 혐오가 탄생시킨 오만 덩어리, ‘강진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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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공식 홈페이지]


2021년 드라마 중 화제성과 인기로 가장 주목받은 단연 <괴물>일 것이다. <괴물>에서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강진묵은 회가 거듭될수록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반전의 인물로 떠오르지만, 극 초반 그의 어눌하고 느린 말투와 몸짓은 용의선상에서 제외되는 충분조건이 된다. 그 이유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무조건 착하고 순수하고 순진한 사람들로 보는 편견과 ‘저런 몸으로 어떻게 범행을 저지르겠어?’라는 ‘할 수 없음’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있다. ‘이 사람이 범인이라면 장애에 대한 편견을 비틀고 허를 찌르는 인물이 되지 않을까?’라며 내심 기대했었다.


그러나 6회가 시작되면서 강진묵이 그동안 장애를 연기했고 20년간 살인을 저질러 온 연쇄살인범임이 드러난다. 이 순간 기대는 우려가 되었고, 기만과 조롱을 당한 아주 기분 나쁜 반전으로 기억된다. 강진묵의 장애는 가짜다. 장애인을 흉내를 내며,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이용해 자신의 열등감과 분노를 힘없는 여성들을 살해하는 것으로 해소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 장애에 대한 우롱이며, 기만이고 비장애인들이 갖는 오만과 편견이 드리운 캐릭터이다. 그래서 가짜 장애인을 덧씌운 살인범 강진묵은 아무리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해도 편견과 혐오를 오히려 부추기는 캐릭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시대적인 장애인 인식이 그대로 재현된 캐릭터,‘서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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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공식 홈페이지]


<지리산>은 방송 전부터 많은 기대와 화제를 모았다. 특히 우리 드라마 사상 최초의 휠체어를 탄 레인저, 그것도 여성 레인저인 서이강을 전지현이 맡았다. 미드나 영드에서처럼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온갖 첨단장비를 활용해 범인을 쫓고 추격하는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때가 온 것인가? 잠시나마 했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것은 서이강이 산을 타는 장면이 대부분 휠체어에서 떨어져 뒹굴고 구르며 더 이상 오를 수 없어 몸부림치는 장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동료의 등에 업혀 내려가는 모습은 정말 허탈했다.


장애를 한계와 결함으로 보는 기존 인식에 갇혀 동료애에만 기대는 해법은 장애인은 도움을 받아야 산에 오를 수 있다는 정형화된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급기야 마지막 회 엔딩에서는 서이강의 휠체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두 다리로 지리산 정상에 서서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는 장면까지 연출된다.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장애는 고칠 수 있고 산은 걷는 사람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된다. 이 얼마나 장애에 대해 알지 못하는, 비장애인 중심의 편견과 편협, 왜곡과 오만이 내재된 캐릭터인가?


이처럼 우리나라 드라마 속 장애 캐릭터에는 편견과 혐오, 무지와 차별이 내재된다. 아직 우리 사회가 다양성보다는 ‘평균’, ‘중간’과 같은 키워드가 주류인 시스템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미디어는 여기 해당되지 않는 다양한 소수를 깎아내리거나 아예 특별하거나 천재적이고, 좀 더 착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것으로 보일 때가 많다.





나는 늘 상상한다. 

미디어, 즉 드라마가 다양성과 소수성을 인정하고 

지향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 어떻게 될까? 


인권 감수성이 높은 나라에서는 이미 장애 캐릭터와 비장애 캐릭터의 경계가 허물어졌고, 장애는 비장애인의 도움이 필요한 열등한 존재이고 비장애는 도와주는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이 이미 깨져 버린 듯한 여러 드라마를 볼 때마다 공감하며 부러워진다.


우리나라 미디어 콘텐츠 특히 드라마 제작자나 실제 제작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몇 해 전 정말 공감하며 본 클레이 애니메이션 <메리와 맥스>의 자폐 스펙트럼장애를 가진 맥스의 대사로 대신하고 싶다. “나는 치료받고 싶지 않아. 나는 아스피 인 게 좋아. 나를 바꾸려고 치료하는 것은 내 눈동자 색깔을 바꾸려는 것과도 같아.” 미디어가 당사자의 눈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나눌 수있는 이야기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난 시사, 교양, 오락, 드라마 등 각 장르의 재미와 특성을 살린 콘텐츠에서 당사자의 목소리와 생각이 배인 이야기와 모습이 보고 싶어질 뿐이다.




글 백수정(대중문화 비평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