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시대를 반영합니다. 최근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다양함이 드러나고, 문화 창작자들이 그 다양함을 들여다보고 읽어낼 수 있게 성장한 것 같습니다. 그중 드라마는 비용이나 장소의 제약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누구와도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휴식 같은 겨울방학, 긴긴 겨울밤을 함께 할 드라마 세 편을 소개합니다.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드라마 이야기를 같이 나누다 보면 공감대는 물론 장애에 대한 생각도 성큼 커질 것입니다. 가능한 한 중요한 내용을 말하지 않으면서 함께 보고 싶은 드라마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의 대형 로펌 생존기
[사진 : ENA 홈페이지]
“길 잃은 외뿔고래가 흰 고래 무리에 속해 함께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요. 저는 그 외뿔고래와 같습니다. 낯선 바다에서 낯선 흰 고래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모두가 저와 다르니까 적응하기 쉽지 않고, 저를 싫어하는 고래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제 삶이니까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 16회 ‘이상하고 별나지만’ 中
2022년의 화제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좋은 대사들이 많습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대사가 많다는 건 그만큼 드라마의 완성도가 높다는 의미겠죠?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비장애인 관객의 마음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처지를 보며 ‘나의 삶은 괜찮다’라는 위안을 얻거나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며 주인공을 응원하고 ‘나도 더 힘을 내야겠다’라는 다짐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한 편으로는 형을 폭행하여 죽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증 자폐성 장애인 정훈을 등장시켜서 그의 어머니의 말을 통해 미디어가 외면한 자폐스펙트럼 장애의 현실을 짚어주기도 합니다.
“변호사님도 정훈이도 똑같은 자폐인데 둘이 너무 다르니까 비교하게 되더라구요. 자폐가 있어도 머리 좋은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듣긴 했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니까 마음이 이상했어요. 자폐는 대부분 정훈이 같잖아요…”
많은 영화나 드라마들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특별한 재능에만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또한 정훈의 엄마를 통해 현실을 짚어내긴 했지만, 기본 자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재미있게 봐준다는 것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기적 같은 일인지 잘 알고 있다”는 문지원 작가의 고백을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이어가기 위해 창작자들은 모든 노력을 합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재료라도 조리하지 않으면 먹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선한 야채라도 샐러드 소스를 뿌려야 먹게 되는 것처럼 창작자들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소스처럼 토핑처럼 뿌리는 것입니다. 서울대 로스쿨 수석졸업자이자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천재 변호사, 착한 비장애인 남성과의 러브라인, 출생의 비밀 그리고 실제 사건에 근거하여 잘 짜인 법정장면... 이 모든 요소의 중심에는 스스로의 삶이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우영우가 있습니다. 덕분에 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가 높아졌습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정신건강의학과로 처음 오게 된 간호사 정다은이 정신병동 안에서 만나는 세상과 사람들의 이야기
“원래 아침이 오기 전에 새벽이 제일 어두운 법이잖아요. 그렇지만 이건 분명해요. 처음부터 환자인 사람은 없고 마지막까지 환자인 사람도 없어요. 어떻게 내내 밤만 있겠습니까? 곧 아침도 와요.”
- 1회 ‘아침이 오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 中
4년 전 정신과를 찾던 첫날이 기억납니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정신과 문을 열었더니 대기실은 빈자리 하나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환절기 때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을 때 같았어요. 자리가 없어 간이의자에 앉아 있다가 호명 받고 진료를 받고 나니 어떤 경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제 삶이 확장되었습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같은 거고, ‘정신병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예상할 수 없는 병’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음에도 병원 문턱을 넘는 일은 어렵더군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1회에서부터 아주 경쾌하게 이 문턱을 넘어 보입니다. 정신과 의사 공철우는 자신의 첫 외래환자 동고윤에게 “아직까지 정신과 다닌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보는 게 현실이잖아요. 근데 이미 가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치료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라고 격려합니다. 현란하게 손가락을 꺾으며 강박이 있다고 자기를 소개하는 동고윤의 얼굴을 보니 그 전 장면에서 좀 이상해 보이던 사람이라 정신병 환자겠거니 하며 보게됩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의 직업이 밝혀지고, 그의 강박의 근거를 알고 나면 ‘정신병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예상할 수 없는 병’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또한, 1화 주인공 오리나 님에 대해 “금수저로 잘 크셨던데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아픈 거래요?”라고 정다은이 물었을 때 “뭔가를 넘치게 가졌다고 해서 정신병에 안 걸리나?”라고 되묻는 정신과 의사 황여환의 모습을 통해서도 같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후 주인공 정다은이 겪는 급격한 변화를 함께 겪으며 시청자들은 ‘정신병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예상할 수 없는 병’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 드라마의 연출자인 이재규 감독도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3년간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 ‘내’가 나약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고 합니다.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세요.
사랑한다고 말해줘
손으로 말하는 화가 차진우와 마음으로 듣는 배우 정모은의 소리 없는 사랑을 그린 클래식 멜로
사진 : ENA 홈페이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히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엔 노력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넨다. 나를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다고. 준비한 말을 천천히 하고 난 뒤엔 웃었다. 가벼운 인사 몇 마디에 무슨 생각이 그리 많냐는 듯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 2회 ‘울림’ 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우성 배우가 청각장애인 화가 차진우를 연기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해온 어떤 분은 예고편을 보고 농인들은 수어를 할 때 입과 얼굴 표정을 함께 사용하는데 정우성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시청자들도 장애계도 만족스러운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