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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02

[찰칵! 현장 출동] 여행의 즐거움을 지금 여기에서, 모두가 차별 없이 떠나는 VR 해외여행

  • 무장애 VR 해외여행 체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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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행사는 한국장애인재단에서 주최하고, 보건복지부와 신한금융그룹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4월 20일 제43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을 위한 무장애(Barrier-Free) VR 해외여행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행사이다. “당신을 위한 특별한 초대”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장애인을 포함하여 100여 명이 참가했다. 장애유형도, 연령도 다르지만 모두 똑같이 이탈리아로 VR 여행을 떠났다. 

 

 

당신 주변의 관광약자


최근 해외여행 붐이 일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3년 동안 억눌렸던 여행에 대한 욕구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중이다. 코로나19 확산이 잦아들고 방역지침이 완화되자 인천공항은 해외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5월 해외여행 예약은 코로나 이전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기사도 나온다. 따뜻한 봄을 맞이하여 국내외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런 여행으로부터 소외된 이들도 있다. 바로 관광약자다.


관광약자는 장애인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멀미로 인해 장시간 이동수단을 탈 수 없는 사람들, 임산부, 노약자 등 관광약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중 가장 열악한 관광 환경에 놓여있는 것은 장애인과 그들의 보호자일 것이다. 장애 유형이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장애인은 상대적으로 해외여행이 곤란하다. 장시간 이동이 어렵고 현지 체류에도 도움이 필요하다. 여행 정보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이러한 관광약자를 위하여 등장한 것이 ‘무장애 VR 해외여행’이다. VR기기를 착용하고 360도 입체적인 가상공간에서 체험하는 실감형 해외여행이다. 1분 안에 해외여행을 시작할 수 있고, 오랫동안 비행기를 타거나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 새로운 방식의 여행을 체험하고자 많은 이들이 모인 이유다.



공항의 설렘부터 여행지의 달콤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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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여행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 여행의 설렘은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마치 공항과 비슷한 모습으로 꾸며진 행사장에서 항공사 직원에게 초대장을 보여주면 VR랜선 국제공항에서 비행기 티켓으로 교환해준다. 출발지와 도착지, 탑승구, 좌석번호 등 실제와 동일한 내용이 티켓에 인쇄되어 있다.


티켓을 소중히 받아들고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내비친다. 해외여행도 생소하고, VR 기기 착용도 낯설기 때문이다. 노영자(인솔자) 씨와 신세라(정신장애) 씨는 그동안 해외여행을 하기 어려웠던 이유를 얘기하며 VR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얘기했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비행기 타는 걸 무서워해요. 그래서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는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지요. 제주도 정도만 가봤거든요. 그런데 VR로 이탈리아에 가볼 수 있다니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직장 다니느라 바빠서 여행을 제대로 가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VR 기기를 쓰고 이탈리아에 가볼 수 있다니 신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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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의 안내를 받아 좌석에 앉으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오늘의 여행지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120여 개의 섬과 400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수상도시로 알려져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꿈꾸는 도시이기도 하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자리에 앉으면 마치 실제 비행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공항에 도착하고 그 뒤부터는 이탈리아의 곳곳을 직접 걷는 듯한 느낌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 VR 기기에서는 이탈리아의 풍경이 펼쳐지는 것과 동시에 장소에 대한 음성 안내가 곁들여진다. 기기를 착용하는 행위만으로 재밌는 여행이 시작된다. 

 

 

가상공간에서 실감나는 여행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리알토다리의 모습이 보인다. 리알토다리는 베네치아를 연결하는 4개의 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주변에 관광객들의 모습도 있어서 마치 그들과 함께 걷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VR 해외여행 체험은 입체적인 가상공간을 즐길 수 있으며, 내 시선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원하는 곳을 360도 움직이며 마음껏 볼 수 있으니 실제로 베네치아에 와 있는 것 같은 실감이 든다. 마치 그곳의 냄새까지 전해져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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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명소에 가보는 정도의 체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여행객들이라면 둘러볼 법한 거리의 가게들도 화면에 담겨 있다. 이탈리아하면 떠오르는 먹거리인 젤라토 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고, 화려한 문양의 가면들도 구경한다. 과거 베네치아에는 가면을 쓰는 풍습이 있었다. 16~17세기 베네치아에서는 외출할 때 신발을 신는 것처럼 가면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가면의 종류도 모양도 다양하다. 가게에서 가면을 둘러보며 여행의 소소한 즐거움을 맛본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베네치아 여행이 끝난다. VR 기기를 벗으면 현실로 돌아온다. 아까의 그 행사장이지만 어딘지 다르게 보인다. 낯설고 새롭게 느껴진다. 마치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오는 기분이다.

 

 

순간이동 같은 VR여행


지금까지 딱 한 번 해외여행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이학범(뇌전증장애) 씨는 VR 해외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장소로 바다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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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강을 보는데 마치 드라마 속에 있는 것 같더라구요. VR 여행은 돈을 안 들이고 시간을 절약해서 여행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순간이동하는 것 같았거든요. 지금 여기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순간이동을 해서 여행하는 기분이요. 순간이동 기술이 진짜로 현실에서 실현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들과 함께 여행에 나선 고덕순(보호자) 씨는 VR체험의 생생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생동감이 있어요. 강물이 흐르고 진짜로 내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지루하거나 불편할 줄 알았는데 아주 좋은 경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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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김태영(지적·뇌병변장애) 씨는 현지인들과 함께 걷는 느낌이 좋았다고 말했다. 


“영상 속에 풍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좋았어요. 꼭 같이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특히 박물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다른 나라의 문화가 집약된 곳이잖아요.”


한편 신세라(정신장애) 씨는 VR 체험의 확장 가능성을 말했다.


“여행 가기 힘든 사람들에게 너무나 좋을 것 같아요. 진짜로 걸어 다니면서 보는 것 같았거든요. 앞으로 영화도 이렇게 생생하게 볼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고소공포증 때문에 여행이 어렵다고 얘기했던 노영자 씨는 실제 여행보다 VR 여행이 더 좋은 점으로 ‘몸이 불편하지 않은 것’을 꼽았다.


“직접 걸어 다니면 다리가 아플 수 있잖아요. 그런데 VR 여행은 몸이 불편하지 않으니까 좋았어요. 또 영상 속 명소를 실제로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진과 엽서에 오늘의 추억 담아


VR 여행을 마친 참가자들은 여행지의 풍경이 인쇄된 엽서에 글을 적어 내려가거나 베네치아 축제 가면을 직접 만들며 여행지의 추억을 다시 느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았던 모양인지 엽서 쓰기가 굉장히 인기였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엽서에 적었다. 스티커를 붙이고 예쁘게 꾸미는 모습에서 즐거움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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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이 있듯이, 참가자들도 오늘의 여행을 기록할 사진을 찍었다. 비행기 창문을 본뜬 이미지로 만든 포토월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즉석에서 예쁘게 액자로 만들어 주었다. 사진 덕분에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특별한 체험이 담긴 사진 액자를 들고 참가자들은 즐거웠던 여행을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참가자 이학범(뇌전증장애) 씨는 여행이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하고 풍경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우리의 시각을 넓혀줄 것이기 때문이다. 개회식에서 한국장애인재단 이성규 이사장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보고 듣고 느끼고 읽고 생각하는 것은 중요한 덕목”이다.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생각이 더욱 깊어지기 때문이다. 관광약자들에게 VR 여행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길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따뜻한 선물이 된 VR 기술


오늘 행사를 운영한 올바른네트웍스의 김군수 대표는 여행업을 한 지 10년된 전문가이다. 그는 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중증장애인의 한 마디가 오늘의 VR 여행을 만들도록 해주었다고 말한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중증의 장애인분이 평생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가보셨다고 얘기하시는 거예요. 그분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시작한 것이 관광약자를 위한 VR 여행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VR 해외여행 영상을 만들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화면이 흔들리면 어지러울 수 있기 때문에 촬영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했고, 이후 편집과 자막 작업 등을 통해서 어떤 장면을 어떻게 보여주면 좋을지 고심했다. 멋진 전망을 선사하고자 베네치아의 교회 옥상까지 높은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렇게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의 VR 여행 영상이 만들어졌다. 만드는 과정에서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업이 끝나면 보람도 컸다. 특히 여행하기 어려웠던 관광약자들이 VR 여행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기쁨이었다.


기술의 발전이 너무 빨라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특히 어떤 기술이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고 개발되었을 때 사회에서 소외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은 다루는 사람에 따라 따뜻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 관광약자를 위한 VR 체험이 여행을 떠나기 힘들었던 중증장애인의 소원을 이루어주거나 일상에 치여 여행을 꿈꾸지 못했던 이들에게 삶의 활력을 되찾아주는 것을 보면 말이다. 김군수 대표는 더 많은 사람들이 VR 여행이라는 혜택을 누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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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파란 하늘 보기 힘들잖아요. 그럴 때 VR 기기를 통해 하늘을 보며 잠시 쉬는 거예요. 그러니까 VR 해외여행은 관광약자를 비롯한 누구에게나 휴식을 선물할 수 있을 거예요.”


또한 김군수 대표는 누구나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되고 보행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처럼 장애 역시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누구나 여행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는 살면서 많은 기회를 만난다.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기회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는 여행조차도 특별한 기회를 만나야지만 실현 가능한 것일 때가 많다. 단체의 지원을 받거나 이벤트에 당첨되어야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장애인들이 있다. 또한 여행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워서, 이동이 불편해서, 보호자가 함께하기 어려워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떠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여행은 삶의 활력이 되고, 인생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즉,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그러므로 장애인들도 차별 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라고 말이다. 관광약자들이 VR 해외여행을 통해서 더 많은 페이지를 읽어나갈 수 있도록, 무장애 VR 해외여행 산업이 앞으로도 더 눈부시게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취재 : 김주현, 남궁소담
사진 : 김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