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20만명의 방문객이 찾는 서울 강남구 코엑스. 이곳의 명소인 별마당 도서관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콘서트가 열렸다. 가수 김장훈, 김종서, 권인하, 정세훈 등 화려한 라인업 만큼이나 눈을 끈 것은 특별한 관객들이었다. 중증장애인 10여명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공연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을 기획한 김장훈 가수는 이번 공연으로 그의 오랜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한 중증장애인 친구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공연을 보고 싶다고 말한 뒤로 오랫동안 머릿속으로만 기획해온 행사였다.
지난해 4월 김장훈 가수가 처음 '누콘(누워서 보는 콘서트)'을 세상에 선보인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그간 공연의 스케일은 더욱 커졌다. 공항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고 누워서 보는 야구 경기를 기획하기도 했다. 올해도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누 시리즈(공연, 운동경기 관람 등 중증장애인들과 누워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시리즈)' 준비에 여념이 없다는 가수 김장훈을 한국장애인재단 웹진 '세상을 여는 틈'이 만났다.
그가 바꾸려는 것들
김장훈 가수는 지난해 4월 별마당 도서관에서 열린 '누워서 보는 콘서트' 이후 다양한 '누 시리즈'를 기획하고 실행해왔다. 중증장애인들이 덕수궁 나들이를 떠나는 '누나(누워서 가는 나들이)', 누워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누야(누워서 보는 야구경기)' 등이 이어졌다. 이런 행사를 하는 이유는 하나다. 비장애인들이 일상을 보내는 공간에 중증장애인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많이 노출시키는 것. 노출이 반복되면 인식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면 그가 없어도 중증장애인들이 편하게 나설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2022년 장애문화예술인 홍보대사를 맡고 나서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활동은 결국 이슈를 만들고 캠페인을 하는 것이었어요. 비장애인들이 일상을 보내는 쇼핑몰이나 공항, 궁궐과 같은 곳에 장애인들이 함께 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거죠.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오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결국 제가 인식을 개선해야 하는 건 그분들이 아닌 비장애인들이기 때문이죠."
누콘(누워서 보는 콘서트)을 준비하는 과정은 다른 콘서트의 준비 과정과는 크게 다르다. 그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아무래도 관객들의 이동 동선이다. 중증장애인과 보호자들이 공연에 참석하는 데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최대한 걸림이 없는 동선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동선 파악을 위해 현장 답사를 직접, 여러 번 가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도 직접 타보고, 몇 번 출구로 드나드는 것이 가장 편한지, 주차장 몇 구역으로 들어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도 꼼꼼하게 체크한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중증장애인 가족들에게 식사도 대접하고 선물 꾸러미도 주는데 이 과정 역시 하나하나 그의 애정이 담겨 있다.
행사 당일에는 가족 한 명 한 명 '일대일 케어'에 들어간다. 물론 그 혼자 다 할 수는 없어 도움을 받는다. '꾸미루미'라는 봉사단체 구성원들이 중증장애인 한 명씩을 담당하여 행사 당일 동선을 확인하고 안내한다. 그중에서 가장 철저하게 준비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화장실이다. 비장애인들은 아무 걱정없이 생활의 일부로서 하는 행위가 중증장애인들에게는 가장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요소가 된다.
“공연을 기획할 때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 위치를 항상 봐 두고, 주변에는 패드도 구비 해놓고 있어요. 공연에 평균적으로 5~10명 정도의 중증장애인분들이 오시는데 그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예요. 한 명이라도 소홀하게 대접하는 일 없이 제가 다 세밀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적정한 인원이기 때문이죠. 덕분에 그동안 어떤 민원이나 사고도 없었어요.”
그의 진심과 정성이 닿은 덕분일까. 주변에서 그의 뜻에 동참하겠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김포공항공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 누콘(누워서 보는 콘서트)을 공항에서 진행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그렇게 행사는 대구공항, 일산 원마운트 등으로 이어졌고 올해 5월에는 중증장애인들이 클래식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누워서 보는 클래식' 행사도 열릴 예정이다.
‘기부천사’의 시작은 어머니
김장훈 가수와 ‘기부’, ‘봉사’는 뗄 수 없는 키워드가 됐다. 장애문화예술인 홍보대사를 맡기 전에도 그는 사랑의 쌀 나눔 운동, 독도지킴이 등 꾸준히 선행 활동을 하고 있었다. 기부금만 수백억에 이른다는 사실도 많은 대중들을 놀라게 했다. 선행의 시작이 언제였냐는 대답에 그는 정확한 시점을 기억하고 있었다.
“1998년 5월이었어요. 가수로서 대중들의 인정을 받고 난 시점이었는데, 그때 목사이셨던 어머니께서 ‘너도 이제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그 사랑을 돌려주는 일을 하면 좋지 않겠니?’ 하고 물으셨어요.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이 있었는데, 그 시설에서 한 달에 한 번 하는 생일파티에 와서 공연을 해주면 어떻겠냐고요. 그때 아이들 앞에서 공연을 한번 하고 나니 자꾸 아이들 얼굴이 눈에 밟히더라구요.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그를 봉사와 기부의 길로 이끈 어머니는 일찍이 당신 스스로 아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가출 청소년을 돕는 곳을 오래전부터 만들어 많은 청소년들을 보살핀 것이 대표적이다. 그때 김장훈 가수의 어머니와 인연을 맺은 청소년 중에 지금은 성인이 되어 ‘누콘(누워서 보는 콘서트)’에서 중증장애인들을 돕는 또 다른 봉사자로 활약하고 있는 이도 있다고 한다. 어머니는 여러 번 아들의 공연을 관람하러 오면서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항상 가장 뒷좌석을 자처했다. 대기실에 들린 적도 거의 없다. 공연 스탭들을 불편하게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덕분에 기부와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해도 수십년간 이어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기부와 봉사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김장훈 가수는 “그냥 좋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오늘 하루를 큰 의미 없이 뒹굴뒹굴하며 보냈을 때의 기분과 뭔가 세상을 위해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한 하루 끝에 느껴지는 마음이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봉사 일정을 빡빡하게 잡은 전날 ‘너무 무리를 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설렘마저 느껴진다고 한다.
우연히 찾아온 ‘제2의 전성기’
나눔은 물론 그는 요즘 본업인 가수로서도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부캐' 숲튽훈이 10~20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다. 숲튽훈이 처음 유행하기 시작한 계기는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지만, 김장훈 가수는 이를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처음 (숲튽훈 영상이) 유행했을 때 가족들이나 팬들이 힘들어한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어요. 하지만 저 스스로는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쉬웠죠. 제가 부진했던 순간들만을 모아서 영상을 그렇게 편집해놓으면 아무리 훌륭한 가수라도 당해낼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일단 댓글이 너무 웃기잖아요. 게다가 무관심보다는 악플이 낮다고, 사람들이 숲튽훈 영상을 보다 보면 반드시 제가 멋지게 노래한 영상들도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제가 이 일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니까 사람들도 좋아하고, 지금은 숲튽훈을 유행시킨 것이 '김장훈의 빅픽쳐가 아니었나' 하는 사람도 나올 만큼 저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준 계기가 됐어요.”
숲튽훈이 그에게 안겨준 새로운 기회를 김장훈 가수는 십분 활용하고 있다. 숲튽훈 이미지를 이용하여 고등학생 콘셉트의 버츄얼 유튜버로 데뷔하는가 하면 인터넷 개인 방송 서비스 트위치에서 팬들과 소통에도 나섰다. 숲튽훈이 유행하고 난 뒤에는 그의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 나이대가 대폭 낮아졌다. 관객들 평균 연령이 30세 정도 내려가다 보니 일상생활에서도 그 전보다 모범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적신념이 깊은 열정적인 중재자
그의 MBTI는 INFP다. MBTI 전문가들은 INFP에 대해 ‘차분하고 창의적이며 낭만적인 성향을 보이면서도 내적신념이 깊은 열정적인 중재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뭇 그의 성향을 잘 반영하는 MBTI로 보인다. 창의성은 김장훈 가수가 지금까지 섰던 1만회 이상의 공연에서 보여준 다채로운 기획자로서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업가로서 돈을 벌고, 그 돈을 예술과 봉사에 쓰는 면모에서는 세상의 논리에 적응하려 하지 않는 낭만적인 성향이 엿보인다.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은 신념과 열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도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열정을 다 바쳤던 음악이 즐겁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이다.
“가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당황했던 순간이 공연장을 가는 길이 즐겁지 않아졌을 때였어요. 그때는 '노래하는 것이 즐겁지 않은 상황에서 억지로 노래를 하는 것이 예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바른 자세일까?' 하는 고민에 노래를 잠시 멈춰야겠다고 생각했죠.”
슬럼프에 빠진 그를 늪에서 꺼내 준 것은 '자기 객관화'였다. 유명해지기 전, 단순히 음악이 좋아서 했던 시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또 어떤 목표를 세우지 않고 그저 음악을 하는 것이 즐거워서 이어나갔던 시기라 자유로웠다. 그런데 어느 정도 대중들 사이에서 인지도를 쌓고 난 후에는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 자신을 괴롭혔다는 걸 오랜 고민 끝에 깨달은 것이다.
이 시기 이후 그는 지금과 같은 철학을 정립했다. 돈은 사업을 통해 벌고, 공연은 취미로 하자고. 그러지 않으면 그 스스로 '동원한 관객 수', '음원 성적' 같은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고 그건 그가 팬들을 진심으로 만나거나 오래 음악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공연을 꾸려나가니 사람들도 알아주기 시작한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건 시장 논리인데, 유일하게 논리보다 낭만이 있는 것이 김장훈 공연이다' 하고 팬들이 생각해주신 것 같아요. 이 마음을 갖고 나서는 공연장 분위기에서 더 따뜻함이 느껴져요.”
독도 지킴이, 일본에서 공연할 날을 꿈꾸다
가장 공연을 하고 싶은 나라를 묻는 질문에는 뜻밖에도 '일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10년이 넘게 독도지킴이로서 역할을 해 온 탓에 일본에서 취업비자가 발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일본에서 공연을 하고 싶은 이유는 일본에서도 한국까지 그의 공연을 찾아주는 일본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준코와 히로코라는 일본 팬이 있어요. 준코는 어머님도 저의 팬이셔서 어머님께서 예전에 저의 한국 공연들에 와주셨었는데, 지금은 연세가 드셔서 비행기를 못 타신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도쿄에 직접 찾아가서 꼭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제가 일본에 가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된다면 한일간의 미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좋지 않게 하는 것은 양국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지,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일본 사람은 한국 사람을,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을 매우 친절하게 대해 줘야 한다고 봐요.”
시설보다 중요한 건 시선
웹진 '세상을 여는 틈' 구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묻는 질문에 김장훈 가수는 장애인들이 우리 일상 속에 살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누콘(누워서 보는 콘서트)과 같은 행사를 통해서나마 중증장애인들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뜻깊은 일이지만, 시선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분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일시적인 순간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런 관심을 갖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장애인분들이 원하시는 것은 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사소한 일상처럼 극장을 가고, 공연을 보고, 카페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거예요. 그렇게 해도 사람들이 쳐다보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일상이죠. 그러기 위해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더 중요한 것은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조금만 더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 주신다면 장애인이 꿈꾸는 함께하는 세상이 조금은 더 빨라지지 않을까요”
데뷔 33년차 가수, 공연 기획자, 사업가 등으로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열정과 낭만을 일깨워주는 김장훈 가수. 그의 열정이 더 많은 팬들의 마음에 가 닿기를, 그리고 그가 열어가는 나눔의 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응원해본다.
기획 : 김주현, 선아
사진 : 홍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