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장수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손꼽히는 EBS의 <딩동댕 유치원>은 2022년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지체장애인 ‘하늘이’, 자폐성장애인 ‘별이’, 다문화가정의 ‘마리’, 조손가정의 ‘조아’, 성역할 편견을 깬 ‘하리’, 유기견 ‘댕구’ 등 현실적인 캐릭터들을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였다. 이번 시즌을 기획하고 연출한 이지현 PD는 “왜라는 질문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말로, 방송 철학을 보여주었다.
딩동댕 유치원을 소개합니다
2022년 5월 딩동댕 유치원에 새로운 캐릭터가 소개되었다. 그중 하나는 휠체어를 타는 ‘하늘이’다. 하늘이는 지체장애인으로 휠체어를 이용하고, 운동을 좋아한다. 휠체어 농구 선수가 많다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약 1년 3개월 뒤인 2023년 8월에는 자폐성장애를 가진 ‘별이’가 등장했다. 별이는 우리나라 유아 교육 프로그램에서 발달장애(자폐성장애, 지적장애 통칭) 어린이 캐릭터를 최초로 시도한 사례가 되었다.
“딩동댕 유치원은 EBS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만큼 역사가 깊은 프로그램이에요. 시즌을 거듭하며 시대에 맞게 변화해왔죠. 2022년에 딩동댕 유치원의 PD를 맡으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연구하고 선보였어요. 사실 ‘유치원’이라는 이름이 붙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어요. 누리 과정을 반영한다거나 유치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적인 역할을 고려해야 했죠. 하지만 그런 제약이 저에게는 어렵지 않았어요. 같은 시기에 첫째는 초등학교에, 둘째는 유치원에 다녔거든요.”
자녀가 궁금해하는 것들, 또 자녀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을 바탕으로 아이템을 생각했고 콘텐츠에 반영했다. 자폐성장애를 가진 ‘별이’ 캐릭터도 그렇게 탄생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와 대화를 나누다가 발달장애를 가진 같은 반 아이와 어떻게 지내면 좋을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첫째랑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나누곤 했는데요. 어느 날 한 아이에 대해서 질문을 하더라고요. 같은 반 아이가 수업 시간 중에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선생님이 자리에 앉으라고 하는데도 계속 바닥에만 앉아 있었다고요. 알고 보니 발달장애가 있는 학생이었어요. ‘그 아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네가 이해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미국의 어린이 TV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에 자폐 아동 캐릭터 ‘줄리아’가 등장하듯, 우리나라에서도 발달장애 어린이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함께 연구하는 동안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캐릭터 이해를 위해 장애를 공부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스펙트럼’이라는 표현처럼 하나로 규정할 수 없고, 원인도 증상도 다양하고 범위가 넓기에 캐릭터 설정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제작진들은 ‘별이’를 통합 학급에서 생활할 수 있는 정도의 고기능 자폐로 설정하고 발달장애에 대한 공부를 이어나갔다. PD, 작가, 손인형 연기자, 성우 등 ‘딩동댕 유치원’을 만드는 모든 사람이 자폐를 공부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별이’가 처음 등장한 “안녕, 별아?” 에피소드에서 별이는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이 어렵지만, 자동차의 이름을 모두 알고 말하는 아이로 소개된다. 또한 별이는 소리 자극에 예민한데 그 이유를 이해하기 쉽게 알려준다. “잘했어, 별아!” 에피소드에서는 유치원의 규칙을 따르기 어려워하는 별이에게 어떤 도움을 주면 좋을지 알려준다. 특히 그림(시각 보조물)을 보여주면 소통이 더 수월해진다며 해법도 제시한다. 발달장애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물음표를 갖고 있었던 어린이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다.
“저희 아이들에게도 매년 영상을 보여주었어요. 한 학급에 한 명 정도는 장애아동이 있더라고요. 이제 첫째가 5학년이 되는데요. 반에서 ‘SOS’라는 역할을 맡았다고 해요. 누구라도 ‘SOS’를 외치면 도와주는 건데, 본인이 직접 하겠다고 손을 들었대요. 주로 발달장애 친구가 수업 준비물을 챙길 수 있게 도와주거나 이동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같이 이동한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첫째에게 ‘엄마는 네가 회장을 하는 것보다 SOS를 맡은 게 훨씬 더 좋다’고 얘기해 주었죠.”
별이는 스페셜 에피소드 이후에도 꾸준히 프로그램에 등장했고, 회차가 쌓이면서 별이의 성장도 담아냈다. 방송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는 별이가 이전보다 더욱 집중력이 좋아진다거나, 활용하는 단어가 전보다 늘어났다는 등의 변화였다. 연속되는 이야기 속에서 별이가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의 자문도 받았다.
“딩동댕 유치원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 중에서 성격적으로 저와 가장 닮은 건 하늘이에요. 작가님들이 하늘이 대사를 적을 때면 제가 했던 말을 떠올릴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가장 애정이 가는 캐릭터는 별이인 것 같아요. 별이라는 캐릭터가 딩동댕 유치원에 등장하면서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기 때문이죠. 마치 제 자식처럼 느껴질 정도예요.”
휠체어에서 내리면 탈 수 있어요
장애에 관한 논문, 책, 해외 드라마 등을 참고하며 열심히 연구했지만, 때로는 미처 인지하지 못해서 실수한 경험도 있다. 딩동댕 유치원의 아이들이 유럽 여행을 테마로 배를 타는 장면이었는데, 이때 지체장애가 있는 ‘하늘이’가 배에 타지 못한 것을 보고서 한 시청자가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이다.
“아이들이 배를 타는 상황이었는데 해당 회차 제작 PD가 하늘이를 장면에 등장시키지 않았어요. 그걸 보고서 한 어머니가 휠체어에서 내리면 탈 수 있다면서 자기 아이도 신체장애가 있는데 하늘이만 배를 못 타서 속상했다고 쓰셨더라고요. 현장에 있는 모든 스태프를 비롯하여 편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왜 누구도 휠체어에서 내린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싶더라고요.”
돌이켜 생각해 봐도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왜 하늘이 캐릭터를 휠체어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아이로 생각했을까?’하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현장에서 PD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하늘이를 연기하는 손인형 배우나 성우가 이상하다는 점을 느끼고 얘기할 수도 있고, 이 장면을 지켜보는 카메라 감독이 의견을 낼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해당 회차의 에피소드를 방송할 때까지 그 누구도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이지현 PD는 하늘이에게 목발을 만들어주고, 관련 에피소드를 제작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요’ 편에서 하늘이는 휠체어에서 내려 목발을 짚는 연습을 한다. 이때 주변 아이들이 자꾸 도와주려고 하는 상황이 연출되는데, 하늘이는 “나 혼자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장애를 가진 친구를 ‘도움이 필요한 아이’로만 바라보지 않도록 이끈다. 그리고 어떨 때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얘기하며 장애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시즌 종료, 그러나 새로운 시작
이지현 PD의 <딩동댕 유치원>은 시즌 종료를 맞이한다. 신기하게도 자녀가 유치원을 졸업하는 시기와 딱 맞게 이지현 PD의 <딩동댕 유치원>도 종영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딩동댕 유치원>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PD가 프로그램을 맡아 개편 작업을 거쳐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모든 제작진이 진심을 다해 만들었던 캐릭터들, 함께 그려나갔던 하나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만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 법도 하지만 이지현 PD는 딩동댕 유치원이 일종의 ‘고전’이 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OTT와 유튜브 등의 플랫폼에서 제작되는 어린이 프로그램은 수익을 목적으로 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EBS는 교육 방송이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오랫동안 꾸준히 누적되는 관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저희 아이처럼 같은 반 장애 학생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서 보여줄 수 있는 교과서적인 콘텐츠요. 그것이 고전의 힘이자 딩동댕 유치원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딩동댕 유치원이 어린이 콘텐츠의 바이블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지현 PD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행복한 교실을 만들기 위한 교사 성장 프로젝트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교육대기획 <다큐 프라임-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등의 프로그램이다. <딩동댕 유치원>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준 이지현 PD는 앞으로 어린이들의 성장 드라마 연출을 계획하고 있다. 물론 다양성에 대한 고민과 반영은 계속 이어진다.
다양성의 비결은 ‘질문’
이지현 PD는 ‘왜’라는 질문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왜 방송에는 예쁘고 멋있는 사람만 나와야 하지?”, “왜 장애 어린이는 출연하기가 어렵지?” 이와 같은 질문이 오늘의 콘텐츠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다양성을 위해서 질문한 것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던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성을 반영하게 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늘 ‘왜’라는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체중이 많이 나가는 편이었는데요. 어른들이 저를 보면 ‘여자애가 뚱뚱하면 안 돼. 미스코리아 되어야지’하고 쉽게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더라고요. ‘결혼하면 여자가 이렇게 해야지’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와 같은 말들이 계속 저를 따라다녔어요. 저는 그런 고정관념에 늘 ‘왜’라는 질문을 던졌죠.”
‘왜’라는 질문은 계속 이어져 그를 철학과로 이끌었다. 철학이야말로 세상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EBS에 입사한 것도 그런 근본적인 질문들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남성성, 여성성에 대한 질문이라든지 장애, 다문화에 대한 질문 등 기존 미디어가 해오던 것들을 뒤집어 생각해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온 이지현 PD다.
“일본 NHK의 한 프로그램에 체육 코너가 있는데요. 한 명은 서서 체조를 하고 한 명은 의자에 앉아서 해요. 그러니까 휠체어에 앉아서도 따라할 수 있는 콘텐츠인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장애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입니다’라고 말하거나 자막을 넣지는 않아요. 그냥 누군가는 서서, 누군가는 앉아서 할 뿐이죠. 그래서 우리도 시도했어요. 앉아서 하는 체조 콘텐츠인데 어떤 아이는 의자에, 어떤 아이는 휠체어에 앉아서 해요. ‘왜 지체장애인은 운동 코너에서 배제되어야 해?’하고 질문을 던지고 이를 반영해서 새로운 걸 시도해 본 거죠.”
해당 콘텐츠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만큼 활용도가 높은 운동 콘텐츠였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왜’라는 질문이 다양성을 만들고, 누구나 활용 가능한 콘텐츠로 범용성을 넓힌 셈이다. 이러한 질문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콘텐츠는 ‘철학교육’과 ‘성교육’이다. 아이들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훈련이 필요하며, 그 훈련이 되어야 편견에서 자유로운 어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교육은 두 편의 특집을 제작했지만, 아직은 더 다루고 싶고, 질문하고 싶은 것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당연해 보이는 것에 계속 질문 던질 것
이지현 PD는 앞으로도 계속 질문을 던지며 세상에 꼭 필요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것이다. 어렸을 때 자신이 겪었던 답답함을 자녀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스트레스를 들여다보고 콘텐츠로 풀어내는 일을 이어가고 싶다.
“한 모임에서 어떤 분에게 질문을 받았어요. ‘왜 이런 걸 만들어요?’하고요. 사실 충격을 좀 받았죠. 장애 감수성이 부족한 질문을 계속 하시더라고요. 내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는 건, 다른 곳에 가서는 더 심하게 말할 수도 있는 사람이겠구나 싶어서 아찔했어요. 물론 제가 해온 콘텐츠가 수익적인 면에서 부족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와 같은 편견의 말들이 계속되고 있기에, 더더욱 다양성을 다룬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편견과 차별이 가득한 말과 행동이 우리 사회에서 아직 계속되고 있다고 이지현 PD는 말한다. 그래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제작도 중요하지만, 기성세대에 대한 교육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복한 교실을 모색하며 가장 먼저 교사의 변화와 성장을 담아냈던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예컨대 저희 아이들도 아직 그런 얘기를 들을 때가 있거든요. ‘남자애가 왜 눈물을 보이냐’와 같은 말이요. 그런 말들을 우리 아이들은 덜 듣게 하고 싶고, 우리 아이도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소외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요. 그래서 저는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고 봐요. 부모님들부터 편견이나 선입견을 깨지 않으면 자녀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테니까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차별하지도 당하지도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다는 말이에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저도 계속 질문을 던지고 콘텐츠를 만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