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15일은 ‘흰지팡이의 날’이다.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가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지정한 날로,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배려를 이끌어내자는 취지에서 선포했다. 선포문에는 “흰지팡이는 동정, 무능의 상징이 아니라 자립과 성취의 상징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국내 두 번째 시각장애인 판사인 김동현 판사를 만나 자립과 성취의 여정을 들어보았다.
시각장애인 판사의 하루
김동현 판사는 2015년 제4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이후, 2020년 10월 법관에 임용되어 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올해로 3년 차 판사이다. 기록을 읽고 판결문을 쓰는 일로 판사의 하루는 채워진다.
“법정에 세 분이 앉아 계시잖아요. 가운데가 부장 판사님, 부장 판사님 왼쪽이 좌배석 판사, 오른쪽이 우배석 판사인데요. 바로 제가 좌배석 판사예요. 저의 일은 주로 판결문을 쓰는 거죠. 아침에 출근하면 오늘 일정 확인하고 메일 열어보고, 그다음부터는 계속 기록을 읽고 판결문을 쓰는 것이 거의 90%는 되는 것 같아요.”
현재 한 주에 평균 30건의 재판 변론 기일을 진행하고, 서너 건의 판결문을 쓰며 선고를 내린다. 사건마다 필요한 자료의 양과 숙고의 시간은 다르다. 어떤 사건은 자료를 읽고 나면 자연스레 결론이 나오지만, 어떤 사건은 자료 안에 숨은 것들이 많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3명 합의부로, 서로 의견이 다를 때에는 다시 기록을 보고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고민한다. 김동현 판사는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분쟁을 보고 듣고 판단하는 역할을 해요. 사실 사람들은 자기한테 유리한 얘기만 하잖아요. 그런데 퍼즐을 잘 맞춰서 실제로는 이런 거였구나 하고 딱 발견할 때, 그리고 그것을 판결문으로 잘 작성해서 해당 사건이 제가 결론 내린 대로 확정될 때 뿌듯함을 느낍니다.”
모든 판사들이 그러하듯, 김동현 판사 역시 하나의 사건을 판결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심사숙고한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자료를 읽을 때 활용하는 도구이다.
“저 역시도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컴퓨터를 사용해요.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스크린 리더 프로그램을 추가로 설치해서 이용한다는 점이죠.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료를 듣고 내용을 파악합니다.”
스크린 리더는 화면 낭독 프로그램으로 화면의 내용과 자신이 입력한 키보드 정보, 마우스 좌표 등을 음성으로 알려주어 시각장애인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김동현 판사는 스크린 리더 프로그램을 통하여 자료를 보지 않고 듣는 셈이다.
하지만 사건 기록에도 수많은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럴 때면 속기사의 도움을 받아 이미지를 파악한다. 속기사가 파일에 미리 이미지에 대한 설명을 달아놓는다. 하지만 간단한 설명만으로는 내용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러면 김동현 판사는 직접 이것저것을 물어보면서 추가 설명을 듣고 이해한다. 이미지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
의료사고로 상실한 시력
김동현 판사는 10여 년 전, 카이스트를 졸업한 뒤, IT 전문 변호사를 꿈꾸며 로스쿨에서 재학 중일 때 간단한 시술 도중 발생한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사고였기에 장애를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김동현 판사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현명하게 대응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해보기로 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공부를 놓지 않았기에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이후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 서울특별시 장애인인권센터 변호사를 거쳐 2020년 10월 신임법관으로 임명되어 현재 판사로 재직 중이다.
“어느 정도 회복하는 데까지 3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저 혼자서만 겪어낸 일이 아니었어요. 온 가족이 많이 힘들었죠. 제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어 서울고등법원 연구원이 되고 나니 부모님도 이제 한시름 놓았다 생각하셨지요.”
이후 김동현 판사는 혼자서 생활을 시작했다. 독립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으로 웬만한 일들은 혼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일상을 배우다
장애를 가지게 된 후, 김동현 판사는 일상의 많은 일을 새롭게 배워야만 했다. 그중 하나는 걷는 법이었다. 복학을 준비하면서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흰지팡이를 이용하여 걷는 보행방법을 훈련받았다. 처음에는 똑바로 걷는 연습을 하고, 그 다음에는 복지관 내부를 걷고, 더 나아가서는 차 소리를 들으며 길을 따라 걸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회전문도 지나가 보는 등, 몸으로 직접 경험하며 익혔다.
“예전에는 당연히 할 수 있었던 일을 못하게 되었다가, 다시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많이 느꼈어요.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배워오는 과정은 굉장히 길잖아요. 하지만 재활하면서 다시 배우는 과정은 되게 짧으니까요. 압축적인 성취감을 맛봤죠.”
현재는 아침에 출근할 때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고, 저녁에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여 퇴근한다. 흰지팡이로 보행할 때는 점자유도블록을 따라 걷는데, 중간중간 끊겨 있는 경우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제가 수원에서 일할 때는 그쪽이 신도시라서 그런지 점자유도블록이 잘 갖춰져 있었어요. 하지만 서울은 군데군데 끊겨 있기도 하지요. 익숙한 길이라면 점자유도블록이 없어도 소리를 듣고 갈 수 있죠. 차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정도로요. 하지만 익숙지 않은 길은 좀 다르죠. 점자유도블록만 잘 되어 있어도 흰지팡이로 보행하는 데에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됩니다.”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기에, 장애에 대한 생각 또한 크게 변화했다. 전에는 웬만한 일은 혼자서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하기 힘든 일들이 생겼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말한다.
“사실 전에는 장애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죠. 그저 장애인 시설에 봉사활동을 가면 잠깐 생각해 보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많은 것들이 바뀌었어요. 일상에서 너무 작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사소한 일을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하는 경우도 늘었다. 예를 들면,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신분증을 사진으로 찍어야 할 때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타인에게 부탁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결국, 사소한 과정들을 해낼 수 없어 전체를 맡기는 일도 생긴다. 다행인 점은 법원 안에서는 필요한 것들이 충분히 지원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을 만들면서, 접근성 문제가 있는지 김동현 판사에게 조언을 구해오기도 했다.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떻게 개선되면 좋을지 의견을 얘기했다.
“시스템을 개발하는 단계에서 의견을 듣고 반영을 하면 추가적으로 돈이 들 일이 별로 없거든요. 하지만 다 완성해놓은 다음에 접근성 문제를 개선하려면 추가 비용이 많이 들고, 그러다 보니 비용 문제로 접근성을 포기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많은 기관이나 기업 등에서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접근성을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도전하는 이유
김동현 판사는 한동안 ‘쇼다운’이라는 스포츠에 빠져 있었다. 쇼다운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포츠로, 오락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에어하키와 비슷하다. 양쪽 눈을 가린 채로 소리를 듣고 공의 위치를 파악하여 공격과 수비를 한다. 김동현 판사는 2019년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쇼다운 세계선수권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실력자이지만, 현재는 어깨 부상과 바쁜 일과로 인해 자주 즐기지는 못한다.
“요즘은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에서 요가와 볼링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배우고 있어요. 요가는 예전에 조금 배운 적이 있구요. 볼링은 코치님이 볼을 하나 주셔서 옷과 신발, 가방 등 장비를 갖추고 재밌게 하고 있죠. 겨우 100점쯤 치고 있습니다.”
시작 단계이기에 점수보다는 정확한 자세와 기본기를 닦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활동들이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즘이다. 한편 지난해에는 장애 이후의 삶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써낸 에세이집 <뭐든 해봐요>를 펴냈다.
에세이집을 읽은 한 독자는 김동현 판사를 직접 만나기 위해, 그가 운동을 하는 남산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독자가 건네준 것은 점자 용지에 쓴 편지와 그 내용을 담은 USB였다.
“제가 남산에서 운동하는 것을 알고 독자분이 저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셨어요. 점자 용지에 편지를 쓰고, 또 제가 점자를 잘 읽지 못할 것에 대비해서 내용을 USB에 담아오셨더라구요. 책을 읽으며 감명 깊었던 부분, 본인이 느낀 점 등을 표시하려고 포스트잇을 붙였는데요. 다 읽고 나니 책에 포스트잇이 가득하더라고 하셨어요. 감동적이기도 하고 약간 부끄럽기도 했죠. 하지만 정말 뿌듯했어요.”
책을 쓰면서 김동현 판사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뭐든 해봐요”였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일단 한 번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었다고 한다.
“제가 장애인이 되었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그 일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서 이루어냈으니까요. 제 이야기가 다른 분들한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에세이를 썼습니다.”
시각장애인 법률가가 탄생하려면
2012년 시각장애인 1호 최영 판사, 그로부터 8년 뒤인 2020년 시각장애인 2호 김동현 판사까지 앞으로도 제3, 제4의 시각장애인 판사가 탄생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사실 법관이 하루아침에 나올 수가 없는 거잖아요. 지금 같으면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조 경력을 쌓아야 하죠. 학부에서 좋은 학점을 받고, 법학적성시험(LEET)도 치러야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교육에 대한 접근성이라든지 시험에 대한 접근성도 지원이 되어야 하구요. 특히 로스쿨 과정에서 수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재 지원 등의 인프라도 갖춰져야 합니다.”
김동현 판사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일정기간 동안 경험을 쌓아야 판사가 될 수 있는데, 근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력을 쌓기가 어렵다. 공부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처음 판사 생활을 시작할 때는 모르는 게 많으니까 최영 판사님께 자주 연락해서 물어보곤 했어요. 법을 공부하고자 하는 시각장애인 학생이 있다면, 저는 일단 계속 도전해 보라고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물론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일이라면 도전해봐야죠.”
특히 시각장애인으로서 판사가 되고 싶다면 컴퓨터 활용 능력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컴퓨터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컴퓨터 활용 능력이 좋을수록 같은 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양도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제가 장애를 갖고 한 10년 살아보니까요. 접근성만 잘 갖춰져 있으면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예전에는 진짜 아무 것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 하는 방법이 있더라구요.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이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몰랐죠. 하지만 컴퓨터 파일을 가지고 스크린 리더를 이용해서 하면 되더라구요. 운동도 마찬가지고요. 또 핸드폰 이용이라든지 생활에 필요한 것들에 대해 접근성만 지원이 되면 장애가 있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뭐든 해보세요.”
그의 꿈은 “정년까지 재판 잘하는 판사로서 일하는 것”이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재미있고, 만족하기에 앞으로도 이 일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얘기했다. 또한.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행복을 찾기를 응원했다.
“요즘 경제도 어렵고 사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와 행복을 찾으시면 좋겠습니다.”
법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여겨지는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쥔 채, 두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공평 무사한 자세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각장애인 법조인이 우리 사회에 많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공평무사한 눈으로 우리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불러올 것을 믿는다.
기획 : 김주현, 남궁소담
사진 : 홍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