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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31

[인터뷰 공간 짬] 스타 장애 예술인의 탄생,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 발달장애인이 아닌 ‘아티스트’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확장한 정은혜 작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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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인해 발달장애와 장애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관심이 높아진 한 해였다. 그 중심에 드라마에서는 영희를 연기한 배우로, 다큐멘터리 <니얼굴>에서는 캐리커처 작가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정은혜 작가가 있다. 발달장애인이 아닌 ‘아티스트’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확장한 정은혜 작가를 만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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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난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을 가진 화가 영희 역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드라마 끝난 후에 <니얼굴> 상영에 맞춰 인사도 다니고, 인사동에서 <포옹전>이라고 그림 전시회도 했어요. 책도 두 권 냈는데, <은혜씨의 포옹>은 이야기장수 출판사에서 나왔고, <니얼굴/ 은혜씨 그림집>은 어렸을 때부터 그린 그림, 일기, 편지 같은 것들이 담겨있는데 보리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지금은 한가해서 놀아요. 뜨개질하고 유튜브 <니얼굴 은혜씨> 채널도 운영하면서요.



Q. 드라마 속 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었는데, 연기가 어렵거나 하지 않았나요? 연습은 어떻게 하셨어요?


노희경 작가님이 저를 예쁘게 봐주어서 좋은 드라마에 나오게 해주셨어요. 연기를 따로 배운 적은 없어요. 대본을 보면서 읽고 외우고 틈틈이 연습을 많이 했어요. 아빠가 상대역을 해 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안 보고 할 수 있는 거죠.



Q. 한때는 시선 강박증이 있었고, 지금은 그런 증상을 극복했다고 하셨는데, 비결이 있을까요?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됐는데도 갈 곳이 없었어요. 지역사회 어느 곳에도 갈 곳이 없고 할 일이 없고요. 그래서 방구석에서 뜨개질만 하고. 그동안 받았던 불편한 시선에 대한 스트레스로 상상의 사람을 불러내서 소리 지르고 싸우고 그랬어요. 그런데 양평의 문호리 강가에서 열리는 리버마켓에 나가서 사람들 얼굴을 그려주면서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리버마켓에 참가하는 다른 판매자들도 좋아해 주고, 즐겁게 어울리고, 얼굴 그려달라는 사람들도 많아지면서 인기 판매자도 되고요.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그래서 이제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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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사람 얼굴 캐리커처는 몇 명이나 그리셨나요?


2016년부터 그렸고 코로나 때문에 잠시 쉬었어요. 드라마 끝나고 리버마켓 총감독님이 나와 달라고 하셔서 다시 나갔어요. 지금까지 그린 얼굴은 4천여 명이 넘어요.



Q.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니얼굴> 캐리커처 그려주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 다큐멘터리 <니얼굴>이잖아요. 매일 보는 가족이 나를 촬영하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았나요?


이젠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카메라에 신경 안 써요. 엄마는 화가이자 만화가이고 아빠는 다큐멘터리 감독이고 우리 가족이 예술 하는 가족이잖아요. 그래서 상관없어요. 제가 사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림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작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것이잖아요. 저를 응원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Q. 사람들이 많이 알아볼 텐데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있나요?


드라마 때문인지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불편한 점은 없어요. 안 좋은 점도 없어요. 저랑 같이 사진 찍어 주실래요. 사인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 좋아요. 나를 찾아주고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 주는 것이 좋아요. “재, 영옥이 언니 아니야? 영희 아니야” 이렇게 말하거나 “아, 정말 진짜 맞아?” 이러거나 아니면 주변에서 “꺅!” 소리 지르는 것도 좋아요. 그런 시선에 대해서 싫다거나 하는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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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의 작가가 되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2016년부터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 나가서 사람들을 그린 것이 가장 큰 영향 같아요. 정말 고생하면서 사람들 얼굴을 그렸어요. 처음에 아빠는 반대했어요.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운 그런 곳에 나가서 왜 고생하면서 그림을 그리냐. 그런데 엄마는 나가서 그림을 그리라 했어요. 리버마켓이 이름 그대로 야외예요. 강가라서 여름에는 땡볕이 그대로 천막으로 들어오고요. 에어컨도 없어요. 뜨거운 햇볕을 견디면서 그림을 그려야 했거든요. 겨울에는 강바람 맞으면서 추위를 견디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비 오고 바람 불면 천막 기둥을 잡고 버티면서 있어야 했어요. 꿋꿋이 견디면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그림을 그린 거죠.



Q. 지난 한 해 <우리들의 블루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드라마로 발달장애나 장애인 예술가에 대한 관심이 조금 생겼다고 보는 데 변화를 느끼세요?


앞으로도 계속 더 큰 변화가 있어야 하고요. 저에게 있어서 변화는 제가 번 돈을 엄마에게 쓰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장애를 가졌더라도 자기 일을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면 좋겠어요.


 

Q. 발달장애인의 삶에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언어로, 말로 해야 하는데 발달장애인들은 그런 점이 어렵잖아요. 저처럼 그림이라는 예술로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예술이 발달장애인의 삶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죠.



Q. 그림 중에 포옹하고 있는 그림이 많은데 이유가 있나요?


제 사진첩을 보면 좋아하는 친구들과 포옹한 사진이 많아요. 그런 점이 전시회의 주제가 되었고, 책 이름도 그래서 ‘은혜씨의 포옹’이 되었어요. 저는 사람을 안아주는 게 좋아요. 사람을 안으면 서로가 따뜻해지잖아요. 따뜻하면 기분도 좋아지고요. 포옹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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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은 양평장애인재활사업장에서 장애를 가진 분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거죠?

 

네. 같이 점심도 먹고 일도 하고, 썸도 타고요. 올해의 목표는 연애하는 거예요. 엄마가 너 연애 좀 해 그랬어요. 여러분도 60, 70, 80살 넘어도 연애하세요.



Q.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드라마가 방영되고 나서 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다시 리버마켓에 나갔어요. 지난해 6월 한 달 동안 문호리 마켓에서 캐리커처 의뢰가 1백여 건이 들어왔어요. 최근까지 그 작업을 했고 끝냈어요. 그동안은 사람들만 그렸으니까 이제는 동물도 그리고 자화상도 많이 그리려고 해요. 사계절도 그리려고 하고 채색 작업도 하고요. 많은 분이 저를 기다리고 있어서 부족하지만, 많이 그리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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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업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세요?

 

너무 잘하려고 하면 잘 안 그려져요. 비법 같은 것은 없어요. 저는 경쟁 같은 것도 없어요. 저는 그냥 저니까요. 긴장할 게 뭐가 있어요.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거예요.



Q. 작가라는 존재가 스스로에게 까다롭잖아요. 다른 작가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자기가 잘하는 것 하나라도 잘하면서 돈도 벌고 그러면 돼요. 너무 잘하려고 하면 무너져요.



Q. 좋은 일들이 곰비임비 생기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것 해 보고 싶으세요?


새로운 드라마도 하고 싶고요. 영화나 모델도 해보고 싶어요. 제가 요즘 채식도 하고 있어요. 지구를 위해서 또 새로운 일을 하려면 건강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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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는 가정에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저도 예전에 문을 걸어 잠그고 방안에만 있었던 적이 있어요. 시선 강박증도 있었고 혼잣말도 하고 이도 갈고 바닥까지 갔었죠.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 사라졌어요.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면서 열심히 하면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활동하면서 포기하지 말고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또, 무리하거나 과하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해나가면 그러면 다 잘될 거예요. 자기가 포기하거나 나 이런 것 못해 그러면 진짜 못 하는 거예요. 나 잘할 수 있다 하면 잘할 수 있어요. 그럼 돼요. 




취재 : 김주현, 구혜경 

 사진 : 이용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