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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30

[인터뷰 공간 짬] 학교로 가는 길이 좀 더 행복해지길

  • 장애 학생 부모들과 5년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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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5일, 수십 명의 장애 학생 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채 특수학교 설립을 눈물로 호소하던 모습이 큰 화제가 되어 아직도 많은 시민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그들의 눈물 속 악전고투 끝에 드디어 2020년 서울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설립됐다는 소식이다. 이 학교의 설립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이 다시 화제다.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드물게 극장 관객 수 3만3,000명을 기록, ‘흥행작’을 만든 김정인 감독을 만났다. 그가 왜 장애 학생 부모들과 5년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지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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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화 <학교 가는 길>을 제작하게 된 계기를 소개해 주세요.


인터넷 기사에서 우연히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토론회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내용의 단신을 보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지나쳤을 텐데 딸이 취학을 앞두고 있었던 시기라 그랬는지 “대한민국에 아직도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힘든 부모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차 토론회 때 간단한 촬영 장비를 챙겨서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목격하게 된 겁니다. 장애 자녀를 둔 수십 명의 어머님들이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를 만들게 해달라 애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온갖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용감하고 담대한 어머님들의 모습을 뷰파인더를 통해 지켜보면서 ‘멋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특수학교 건립 문제가 어떻게 결론 날지 알 수 없지만 이 분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장기간의 밀착 촬영에 따른 부담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2차 토론회가 끝나고 2주 정도 지난 후 어머님들을 찾아가 ‘특수학교가 개교하는 날까지 어머님들의 여정을 카메라로 쭉 따라가 보고 싶다’고 제안을 드렸어요. 당시 어머님들은 ‘발달장애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면 누구나 환영한다’라는 입장이셨기 때문에 흔쾌히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동안 언론 인터뷰 외에 장편 다큐멘터리라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릴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셨다고 해요. 게다가 당시 제가 대학원생 신분이기도 해서 어떤 결과를 기대하시기보다는 ‘하다가 어려우면 제풀에 지치겠지’라는 생각도 하셨다고 해요.




Q. 평소에 발달장애 문제에 관심이 있었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주 평범한 수준의 인식만 가지고 있었어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적 인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도 없었거든요. 어머님들은 저에게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주어 고맙다’ 고 하시지만 오히려 어머님들 덕분에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 보는 눈이 생겼고 발달장애인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자주 나오는 것처럼 어머님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거든요. 비장애인들보다 뛰어난 부분도 분명 있는데 이런 점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일방적이고 시혜적 인식을 벗어나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발달장애인들이 교육을 받고 학교를 졸업한 이후 사회로 나가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가족은 다시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애인들의 일자리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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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작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지나간 일은 기억 속에서 미화가 되기 쉬워 그런지 돌이켜봐도 무엇이 힘들었는지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완성도에 대한 부담이 컸습니다. 저를 믿고 카메라 앞에서 진솔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셨던 어머님들의 기대치가 있거든요. 특수학교 설립에 앞장섰던 어머님들의 경우 자녀들이 대부분 성인입니다. 학교가 설립된다 해도 혜택받을 일이 없는 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언젠가 ‘왜 이렇게까지 애를 쓰시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우리가 겪었던 아픔과 상처를 후배 엄마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런 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신 어머님들이 “그동안 우리끼리만 투쟁하는 것 같아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는데 돌아보니 김정인 감독이 늘 우리 곁에 있어 주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우리의 행보가 결코 외롭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동안 갖고 있던 부담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Q. 감독님이 생각하는 이 영화의 공익성은 무엇인지요?


작품을 촬영하면서 가졌던 가장 큰 원칙이 균형된 시각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공개되었을 때 어느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비난한다면 감독으로서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학교 가는 길>은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까지 충실하게 담은 작품입니다. 단순히 지역이기주의나 님비 때문에 주민들이 학교 건립을 반대했다고 그리지 않았어요. 실제로 영화를 보신 분들이 “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내가 마을 주민이었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고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각자의 자리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라는 관람평을 남긴 관객도 계십니다. 학교 건립을 반대하셨던 주민들 중에는 아직도 마음을 풀지 않은 분도 계시지만 반기시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당시 건립을 반대하셨던 비대위 위원장님도 여러 차례 학교 행사에 참여해 응원을 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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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극장 관객 수 3만 3천 명을 넘었습니다.


영화에 공감하신 분들이 입소문을 많이 내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수학교가 들어선 자리가 원래는 폐교된 초등학교 부지입니다. 2017년 2차 토론회를 마치고 궁금한 마음에 폐교부지를 방문했는데 좀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요. 학생 수가 없어서 폐교가 되었다는데 주변이 온통 아파트 단지였거든요. 원래 이 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초등학교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임대아파트가 들어서고 그곳 아이들의 전입이 늘어나자 마을 주민들이 자녀를 다른 학교로 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학생 수가 점점 줄게 되면서 결국 폐교에 이른 거지요. 시차를 두고 벌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가난을 향한 차별 때문에 문을 닫아야 했던 학교가 또다시 장애를 향한 차별로 설립 과정부터 진통을 겪어야 한다는 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Q. 특수학교 건립과 통합교육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영화의 마지막 자막에 “특수학교와 더불어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의 내실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썼습니다. 어머님들의 최우선 순위도 특수학교 건립이 아니라 통합교육이었습니다. 저 역시 일반학교에서 장애인 학생과 비장애인 학생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장애의 성격에 따라 일반학교보다는 특수학교에서 최적화된 교육을 받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겠지요. 특수학교는 특수학교대로 존재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통합교육을 실현해야 합니다. 현재의 통합교육 환경은 같은 반에 장애 학생이 앉아있는 것뿐이지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배우며 같은 것을 경험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Q. 영화 제목 <학교 가는 길>에 담긴 의미는 무엇입니까?


작품이 완성되고 나면 더 멋진 제목으로 바꾸겠다고 생각하고 만든 임시 제목이었는데 촬영이 진행될수록 이보다 더 나은 제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이라는 말에는 물리적인 길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동안 실제로 발달장애 학생들의 스쿨 버스를 함께 타고 촬영을 해본 적이 있는데 등하교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하루에 서너 시간씩 됩니다. 수요에 비해서 특수학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지역의 학생들을 다 태우다 보면 그 길이 정말 꼬불꼬불한 길이 됩니다. 이른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등교를 준비해야 하고 피곤한 몸으로 수업을 받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테니 먼 통학 거리가 장애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교로 가는 길이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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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많은 관객들이 영화 속에서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봤다고 합니다.


저는 절반의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센 반대 속에서 수많은 어머님들의 헌신 덕분에 학교가 지어졌지만 이제 겨우 첫 단추를 뀄을 뿐입니다. 여전히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는 곳이 남아 있습니다. 서진학교 하나 개교했다고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졸업 이후의 삶은 더 대책이 없는 상황입니다. 아직 안도하기에는 현실은 엄중하고 냉혹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영화 개봉 후 소송 등을 겪으면서 본의 아니게 유명세를 탔습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잖아요. 4~5년간 어머님들의 활동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배운 것이 많았습니다. 부담스럽긴 하지만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자리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럽게 어머님들의 심정으로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아직 차기작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제 카메라가 힘이 되고 응원이 될 수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만나면 또 언제든지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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