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을 도와야 할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발달장애인 남동생을 둔 비장애 형제자매이자 9년차 특수교사인 조민경 씨의 생각은 다르다. 각 장애인의 상황을 고려한 역할과 일이 주어진다면, 비장애인에게 얼마든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세상. 조민경 씨는 성실하게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걷게 된 특수교사의 길
장애인의 형제자매인 ‘비장애 형제자매’들은 장애인의 돌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장애인의 전 생애를 곁에서 지켜보고 돌봄에 동참하는 것은 물론, 부모의 부재 시 평생을 함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 살 터울의 발달장애인 남동생을 둔 조민경 씨도 이 같은 삶을 살아왔으며,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장애인들의 성장과 발달을 이끄는 특수교사로서 9년째 일하고 있다.
“가족 중 누군가는 남동생의 장애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고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하고 있었어요. 생업에 바쁘신 부모님보다는 누나인 제가 그 일을 하기에 더 적합할 거라 여기고 조금씩 발달장애에 대해 공부했는데요. 그러다가 특수교사가 저의 적성에 잘 맞는다고 판단했고, 열심히 준비한 끝에 2013년에 임용됐습니다. 처음에는 특수학교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일반 중학교의 특수학급을 맡고 있죠.”
특수학교에서의 업무와 일반 학교 특수학급에서의 업무는 사뭇 다르다. 특수교사가 모여 있는 특수학교에서는 학생 교육 및 돌봄과 관련된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일반 학교 특수학급에서는 특수교사 한 명이 특수교육과 관련된 거의 모든 업무를 처리한다. 그러다 보니 힘들기도 하지만,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한 공간에서 배우고 어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기에 사명감을 갖고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이 조민경 씨의 이야기다.
“일반 학교의 특수학급을 맡으면, 해당 특수교사가 일종의 대표성을 띠게 돼요. 일반 교사들은 저를 보고 특수교육과 특수교사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죠. 그렇기에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 특수학교에 비해 업무도 많은 편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학교 특수학급처럼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교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으니까요.”
모두의 상생을 교육하다
많은 이들이 장애인을 ‘도움을 줘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이런 시선이 많다 보니 장애인들도 도움을 받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관계성은 장애인을 더욱 약자로 만들며, 장애인이 직접 할 수 있는 일마저도 하지 못하게 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조민경 씨는 자신의 제자와 우리 사회가 이런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도 적절한 여건이 주어진다면 비장애인에게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은 장애인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우뚝 설 수 있도록 만드는 밑바탕이 된다. 조민경 씨가 ‘도움을 주고받는 행복한 사람’을 교육 모토로 삼은 이유다.
“일반 중학교의 특수학급이다 보니, 장애 학생들에게는 일을 잘 시키려고 하지 않아요. 장애 학생들의 불편을 줄여 주려는 배려지만,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장애 학생들은 할 수 있는 일도 비장애 학생들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들이 청소, 급식 등 장애 학생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기시도록 유도해요. 장애인도 비장애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힘을 합치면 상생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비장애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죠. 또한 장애 학생들은 역할을 수행하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비장애 형제자매에게 건네는 따스한 위로
비장애 형제자매는 장애인에게 있어 부모보다 더 오래 함께하는 평생의 동반자지만, 여러 측면에서 소외돼 있다. 부모는 짐을 덜어주고 싶어 장애인 돌봄에서 의도적으로 비장애 형제자매를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도 장애인 지원 제도는 부모에게 한정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점은 부모가 돌아가신 후 중장년 장애인을 돌봐야 하는 비장애 형제자매에게 더욱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
“어떤 일을 미리 알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과 갑작스럽게 일이 닥치는 것은 천지차이잖아요. 장애인 돌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부모님들은 비장애 형제자매가 장애인 형제자매를 조금씩 함께 돌볼 수 있도록 가족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는 게 좋을 수 있어요. 이러한 가정 내 노력과 동시에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법적 지위를 보장받고 장애인 돌봄에 있어 합당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도 마련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늘어나는 중장년 장애인들의 삶의 질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조민경 씨는 비장애 형제자매들의 교류와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비장애 형제자매들은 자의든 타의든 비장애 형제자매로서의 고민과 고충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않고 홀로 끙끙 앓는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감정적 방황을 겪는 이들이 많다. 조민경 씨도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성장했기에, 특수교사로서의 장애인 교육과 별개로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경험담을 적극적으로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인비’라는 필명으로 올 1월에 출간한 에세이집 <평범한 대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년여간 발달장애인 남동생을 둔 비장애 형제자매로서의 삶과 생각을 꾸준히 글로 연재했고, 이번에 한 권의 책으로 엮었어요. 남동생을 둔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그 대화에 끼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알게 모르게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글의 제목을 그대로 책의 제목으로 붙였죠. 여기저기에 흩어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한데 모여 평범한 대화를 나눠 보자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고민과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드는 법이니까요.”
'나뉘지 않는 세상'을 꿈꾸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려면 그에 걸맞은 장애인 인식개선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하도록 돼 있는 연 2회 이상의 형식적인 교육과 단순한 장애 체험으로는 근본적인 변화가 찾아오기 힘들다는 게 조민경 씨의 생각이다. 그는 교과 과정이나 생활지도 내에 자연스럽게 장애인 인식개선교육을 녹임으로써 비장애 학생들이 장애 학생들을 진정한 학교와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몇 년 사이 외국인을 표현할 때 백인, 황인, 흑인 등 다양한 인종을 함께 넣는 사례가 부쩍 늘었어요. 그러다 보니 ‘외국인=백인’이라는 편견도 많이 사라졌죠. 장애인의 경우도 이러한 노력을 통해 심리적 장벽을 무너트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교과서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는 내용을 늘린다든가, 장애인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넣는다든가 하는 식의 작은 노력만으로도 장애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질 수 있죠. 아울러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더욱 많이 마련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과 차별이 더 빨리 사라질 수 있을 거예요.”
장애 학생이 학교를 졸업한 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도 더 많이 마련돼야 한다.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의 확산 등 여건이 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장애인들이 졸업 후 집에 머문다. 장애인주간보호센터도 한정된 정원으로 인해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 결국 가족 중 누군가는 장애인 돌봄을 위해 생계를 포기할 수밖에 없고, 이는 가족 전체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결국 장애인을 적절하게 보호하며 경제적 활동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장애인 가족 모두를 살리는 지름길일 수 있다.
“실제로 학교를 졸업한 장애인 중 많은 분들이 취업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여건만 제대로 주어진다면 충분히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장애인도 똑같습니다. 적절한 일을 통해 경제적 독립과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비장애인도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함께하는 사회의 시작이 아닐까요?” 조민경 씨는 말한다. “성별, 인종, 국적, 성격, 생김새 등에서 차이가 있을 뿐, 전 세계인은 모두 같은 인간이잖아요. 장애도 이런 차이점 중 하나일 뿐이에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각자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해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 조민경 씨는 오늘도 그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