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함께 보고 싶은 두 편의 영화 <34번 가의 기적>, <클라우스>
[이미지 출처: 영화 '34번가의 기적' 스틸]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는 이맘때는 늘 설레는데요. 하얀 눈이 쏟아질 것 같고 사슴의 방울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이 연말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면 좋을 영화 두 편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영화 <34번가의 기적>은 1947년에 발표된 고전 중의 고전이자,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영화 1위로 꼽히기도 합니다. 여러 번 리메이크된 작품 중 소개해드릴 작품은 세 번째 리메이크작입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34번가의 기적']
아빠 없이 자란 수잔은
모든 어린이의 영원한 동경과 환상의 대상인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불행한 결혼생활로 꿈을 잃어버린 엄마 도리가 어려서부터 '산타클로스는 없다'고 가르쳐왔기 때문입니다. 도리는 콜즈 백화점 기획 담당 이사인데 지금까지 활동해온 산타클로스가 문제를 일으켜서 새로운 산타클로스를 찾습니다. 노인 크리스가 새로운 산타클로스로 고용되는데 크리스는 하루 만에 기적을 일으켜서 사람들이 백화점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고 물건은 불티나게 팔려 갑니다.
이 영화는 산타클로스는 존재하느냐는 질문을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아주 현실적으로 전개합니다. 도리의 성공적인 기획으로 손님들이 모두 콜즈백화점으로 몰려가자 경쟁사 백화점 사장 빅터는 크리스가 미친 늙은이이고 아이들에게 매우 위험한 존재라는 소문을 퍼뜨립니다. 결국 크리스는 법정에 서고 뉴욕 시민들의 관심 속에서 과연 산타는 존재하는가에 관한 재판이 진행됩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34번가의 기적']
영화는 현실과 환상 사이를 부드럽게 오가면서
산타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주는 데
장애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수잔의 옆집에는 브라이언 베드포드라는 멋진 남성이 살고 있는데 브라이언은 동심을 잃어가는 수잔이 안타까워 크리스에게 수잔을 데려갑니다.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 수잔이 크리스에 대해서 결정적으로 믿음을 갖게 되는 계기가 바로 수어입니다. 크리스는 백화점을 찾은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서 소원을 다 들어주는데 청각장애를 가진 소녀와 수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수잔은 산타를 믿게 됩니다. 수어를 능숙하게 해내고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소녀의 소원까지 들어주는 할아버지라면 정말 산타클로스일 것이라고 믿게 되는 거지요.
[이미지 출처: 영화 '34번가의 기적']
영화는 산타와 아이들, 어른들의 음모, 합리주의의 상징인 재판과 같은 것들을 모두 아우르면서도 마침내 산타의 존재를 믿게 되는 과정을 세련되게 펼쳐갑니다. ‘산타는 있는가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개연성 있게 찾아감으로써 수잔은 물론 그 주변 사람들까지 사랑과 믿음,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꿈을 기억하는 마음, 꿈을 지켜주려는 마음이 사랑과 믿음,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상기시킵니다.
두 번째 영화 <클라우스>는 산타클로스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편지’와 ‘선물’을 모티프로 산타클로스라는 존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펼쳐 보입니다.
제스퍼의 아버지는 전 세계 우편을 배달하는 우체국의 총 책임자입니다. 게으르고 방탕한 제스퍼를 변화시키기 위해 아버지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데요. 아들 제스퍼를 모두가 가기를 꺼리는 ‘스미어스 렌스버그’라는 외딴섬의 우체국장으로 발령을 내고 편지 6천 통을 배달하라는 임무를 내립니다. 제스퍼가 산 넘고 물 건너서 겨우 도착해보니 그곳은 편지라는 것이 존재하기 힘든 동네입니다. 심지어 섬 주민들은 두 가문으로 나눠져서 끝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클라우스']
우리네 현실과도 겹치는 이 상황이 ‘편지’와 ‘선물’의 활약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 영화의 중심 줄거리입니다. 미움과 폭력이 착한 마음과 행동으로 바뀌며 폐허 같았던 마을의 풍경이 따뜻하고 밝게 변해가는 모습은 애니메이션이라서 더 실감 나고 생생하게 표현되었는데요.
<클라우스>는 머나먼 나라를 배경으로 하지만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도 무척이나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착한 사람이 더 많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상의 곳곳에서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있는 혐오와 허무를 만나게 되면 마음이 스산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스미어스 렌스버그’ 사람들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서로를 미워하며 살아오면서도 그 이유를 모릅니다. 어린이들 또한 어른들에게 물들어 꿈도 희망도 없이 서로를 괴롭힐 뿐입니다. 사실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모습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반에 따돌림을 당하는 몇 명은 늘 있습니다. 비슷한 것에 위안을 얻는 아이들은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튀지 않으려 애쓰고 유행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장애를 가졌거나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 온 경우 얼마나 더 힘들까요.
[이미지 출처: 영화 '클라우스']
<클라우스>에는 특별히 장애인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명백히 다른 존재는 있습니다. 마르구라는 아이는 어느 가문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종족도 달라서 어떤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너무 다른 존재입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마르구는 외톨이로 선물도 받지 못합니다. 임시 우편 국장 제스퍼, 나무꾼 클라우스, 그리고 알바 또한 외부인입니다. 모두 부푼 꿈을 안고 있었지만 상반된 현실에 꿈을 포기하기도 하고, 마을을 떠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도 비춥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클라우스']
"선행이 선행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점차 이 고립된 외부인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섬은 조금씩 변해갑니다. 6천 통의 편지를 배달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제스퍼의 절박하고도 현실적인 필요 때문에 시작한 노력은 클라우스의 선물을 받은 어린이의 기쁨으로 이어지고 더 많은 기쁨을 선사하기 위한 선행의 이어달리기가 시작됩니다. ‘선행이 선행을 만들어낸다’는 믿음이 결국 섬 하나를 환하게 밝히며 산타클로스가 탄생하고, 미움과 혐오가 눈녹듯 사라집니다. 두 편의 영화를 모두 보고 나면 마음속에 따뜻함이 가득 차서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갈 힘이 생겼다고 믿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따뜻함과 다정함을 마음 가득히 채우고 복된 새해 맞으시길 바랍니다.
글 류미례(푸른영상 독립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