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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25

[플레이리스트] 장애인의 날, 함께 보면 좋은 영화

  • 스크린 속에서 만나는 당신 곁의 이야기 <그녀에게>, <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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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과 함께 장애인의 날이 찾아옵니다. 365일 늘 한결같아야겠지만, 이날 하루는 특별히 더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보자고 만든 날이죠. 그래서 영화를 통해 그 노력에 동참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해 개봉한 장애 관련 영화 중 원작이 따로 있는 영화 두 편을 소개합니다.

 


그녀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길(그녀에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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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영화로운형제, 애즈필름)


<그녀에게>는 모든 일을 계획대로 이뤄내고야 마는 정치부 기자 ‘상연’이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 ‘지우’를 키우며 좌절과 성취,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이상철 감독이 류승연 작가의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의 마지막 장에서 영감을 받아 준비했다고 하는데, 극 중 상연이 류승연 작가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영화는 신혼여행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상연은 앞으로의 계획을 하나씩 하나씩 읊어대고, 남편 진명은 매사가 그렇게 계획대로 되냐고 묻습니다. 당연하다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상연의 모습은 이후에 펼쳐지는 변화와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이 세계에는 그 존재가 되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영역이 있습니다. 제게는 엄마가 되는 일이 그랬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의 부모가 되는 일은 더욱 그러하겠죠. 우리 모두 어릴 때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인 줄로만 알았잖아요.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늘 자녀에게 헌신적인 사람,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 앞에서 서슴없이 무릎을 꿇는 사람…. 주변에서 만나거나 미디어에서 만나는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모습은 대체로 그랬습니다.


d9f52445890216eefa02a0dda9a837a7_1742881154_4962.jpg (사진 : 영화로운형제, 애즈필름)


하지만 엄마가 되기 전의 상연의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권력자들을 쥐락펴락하며 특종을 따내는 사람. 올해의 기자상을 받을 만큼 능력있는 엘리트로서 최연소 정치부장을 꿈꾸던 사람. 후배 기자들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말 한마디라도 걸어보려던 사람…. 엄마가 되기 전의 상연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점 하나만으로도 영화가 큰일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다른 사람들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원래부터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물론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오랫동안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죠. 하지만 지금 나와는 다른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 사람에게도 나와 다르지 않은 시간, 감정, 마음이 있다는 것, 그 당연한 사실을 영화는 한순간 한순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국회의원을 꾸짖던 기자 시절의 상연과 학부모총회에서 부모들 앞에 선 장애 자녀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상연은 너무나 다릅니다. 같은 반 엄마가 “너무 그렇게 저자세로 안 하셔도 돼요”라고 손을 내밀 만큼요. 그리고 거기에서 또 변해갑니다.


2009년부터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2019년까지 영화는 대략 10년의 시간을 다루는데, 그 시간 동안 상연은 변화하고 성장해갑니다. 복직을 꿈꾸다 지우의 장애를 알게 되면서 무너지고, 애정에서 비롯되었지만 상처를 주고야 마는 주변 사람들의 언행에 한 번 더 무너집니다. 남편과의 관계는 악화되고, 비장애 자녀는 부모의 관심을 호소하죠. 그런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현실에 놓인 상연을 끌어낸 것은 같은 상황을 먼저 겪은 선배였습니다. 대학 시절엔 소원했던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얼마 전에 둘째가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어요”라고 털어놓는데 그 순간 처음으로 상연의 눈물을 보는 것 같아 울컥했습니다.


d9f52445890216eefa02a0dda9a837a7_1742881169_1895.jpg (사진 : 영화로운형제, 애즈필름)


이 장면은 영화 후반부 후배 기자의 전화를 받는 상연의 모습에서 비슷하게 반복됩니다. 자녀의 장애 사실을 알리며 우는 후배의 목소리에 또 한 번 울컥했습니다. 상연에게 선배가 그랬듯이 상연 또한 우는 후배에게 앞으로 할 일을 또박또박 알려줍니다. 영화의 제목이 ‘그녀에게’인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 과정을 겪어온 나는 그녀의 심정이 오롯이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녀에게 알린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상철 감독이 영화에 정말 많은 정성을 들였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볼 때마다 새로운 부분을 발견합니다. 계획한 바는 꼭 이뤄왔고 정의의 실현에 거침없었던 정치부 기자 상연이 장애아동을 키우는 엄마로 살아가면서 변할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할 것, 지켜야 할 것과 포기할 것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애틋하고 멋집니다.


d9f52445890216eefa02a0dda9a837a7_1742881285_5011.jpg (사진 : 영화로운형제, 애즈필름)


류승연 작가는 자신과 같은 상황의 부모(특히 엄마)들에게 연대와 위로의 마음을 담아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상철 감독은 그 마음을 전적으로 이해해가며 영화언어로 표현해냈습니다. 류승연 작가의 책을 읽고 영화화를 결심한 후 이상철 감독은 류승연 작가를 여러 차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장애 관련 서적을 보고 활동지원사 수업을 들으며 긴 시간 동안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그녀에게>는 ‘우리 이야기’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분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더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며 감동을 얻어냈습니다.



손짓으로 전하는 첫사랑(청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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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청설>은 2024년 11월에 개봉해 그 주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로맨스 영화입니다. 대학 졸업 후 마땅한 꿈을 찾지 못한 ‘용준’, 수영 선수인 동생 가을을 뒷바라지하는 ‘여름’, 그리고 두 사람을 응원하는 ‘가을’의 설레는 순간을 담았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수어를 사용합니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풍경, 분위기 있는 음악, 젊음의 거침없음과 싱그러움, 그리고 수어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에는 큰 반전이 있는데, 그 반전이 너무 강렬해서 저는 2009년 대만에서 발표된 원작영화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15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었지만, 두 영화의 청춘들은 정말 찬란했습니다. 사랑에 빠진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밤을 보내고, 거절당할까 봐 망설이면서도 갖은 지혜와 용기를 짜내어 마음을 전하려 애쓰는 청춘들의 열병에 저는 속절없이 감염되고 말았습니다. 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연애세포가 하나씩 깨어나는 것을 느끼며 ‘좋은 영화는 사람을 실제 인생보다 더 살게 한다’고 말했던 대만의 에드워드 양 감독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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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좋은 영화는 예측했던 하나의 메시지뿐 아니라 의외의 발견을 전해줍니다. 영화 후반부에 엄마가 여름에게 좋은 마음과 동정의 차이를 세심하게 알려주는 장면이 특히 좋았습니다. 아무리 동생을 사랑한다고 해도 동생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아무리 동생을 위한다고 하더라도 응원이 아니라 동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언니가 아니라 너만의 인생을 살라는 엄마의 말은 단지 여름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건강한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강력한 반전은 원작에도 존재하더군요. 다만 한국판이 더 세련된 방식으로 준비되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넌 무슨 소리를 제일 듣고 싶어?”


용준에게 던지는 여름의 무심한 물음을 관객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겠지만, 제게는 복선으로 다가왔습니다. 대개 복선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복선으로 이해되죠. 복선을 놓치면 반전이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꼭 한국판을 먼저 보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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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가장 최근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리고 제작진이 그만큼 노력을 했기 때문에 한국판 <청설>에는 지난 시간 동안 장애 관련 영화들이 이룬 성취들이 녹아있습니다. 2000년작 <더 댄서>의 청각장애인 댄서 인디아가 음악을 감각하는 방법이 새로워서 그 장면을 만들어낸 제작진에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24년 후 그 부분을 세련되게 활용하는 한국판 <청설>의 탄생에 흐뭇해집니다. 잘 만들어진 장애 관련 영화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 잠시라도 장애의 현실을 느끼게 해줍니다. 대만판과 한국판 모두에 장애에 무지한 사람들이 나오는데 한국판 <청설>은 실제 장애인 수영 선수의 부모들이 겪었던 일을 그려낸 것이라 합니다.


장애인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장애 현실을 비중 있게 다뤘다고 해서, 장애에 관한 이야기만 하는 건 좀 아깝지요. 한국판 <청설>의 주인공들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시대, 장소,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청년은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청설>은 청년들에게는 위로를, 다른 세대들에게는 빛났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며 청년들을 좀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줍니다.


d9f52445890216eefa02a0dda9a837a7_1742881540_2386.jpeg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청설>의 수어가 어중간하다는 수어 선생님의 평가를 SNS에서 보았습니다. 그 어중간함이 우리의 현재인 것 같습니다. 극 중 인물을 제대로 그려내기 위한 배우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다음엔 한 발짝 더 나아간 수어 영화를 기대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영화에서 장애인은 서사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서나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장치나 도구로 소비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꾸준한 노력 속에서 그런 방식의 콘텐츠들은 서서히 외면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소개해 드린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조금 더 넓어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기획 : 김주현, 류미례(푸른영상 독립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