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2024 파리 올림픽으로 전 세계가 뜨겁게 들썩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경기가 있다. 바로 하계 패럴림픽이다. 패럴림픽은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가 주최하여 4년 주기로 열리는 신체장애인들의 국제경기대회로, 올림픽이 폐막한 후 같은 도시에서 열린다. 태권도 주정훈 선수는 2024 파리 패럴림픽을 앞두고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하루를 보낸다.
패럴림픽 정상을 위한 구슬땀
장애인 태권도 국가대표인 주정훈 선수는 요즘 선수촌에서 훈련에 매진한다. 2018 제4회 아시아장애인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후,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동메달, 2022 항저우 아시안 패러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현재 세계 랭킹 2위인 그가 목표로 하는 것은 2024 파리 패럴림픽 금메달이다.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것이 여전히 아쉬움과 후회로 남아 있어요. 첫 경기 상대가 러시아 선수였는데요. 잘하는 선수지만 이전에 제가 이겨본 선수이기에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선수가 새로 준비해온 발차기에 제가 당황했고, 결국 경기에서 지고 패자부활전에 갔지요. 낭떠러지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그 선수를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러시아 선수와 다시 겨루게 된 상황에서 주정훈 선수는 1회전부터 강한 공격을 하며 경기를 이끌었다. 결국 24 대 14, 10점 차의 완승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경기를 마친 뒤 러시아 선수는 주정훈 선수를 향해 엄지를 번쩍 들며 “챔피언”이라고 외쳤다. 상대방의 실력을 인정하는 진정한 스포츠맨십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니, 패럴림픽 역사상 우리나라 선수의 태권도 첫 메달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주정훈 선수는 금메달을 목표로 했기에 당시 대회가 지금까지도 가장 후회되는 경기로 기억될 정도로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시상식 때 생각했어요. 태극기가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갔더라면 어땠을까 하고요. 만약 그랬다면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이 되었을 것 같아요. 이번 2024 파리 패럴림픽에서는 애국가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국가대표 선수의 하루
요즘 주정훈 선수의 일상은 어찌 보면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하루에 세 번 정규 훈련을 한다. 오전과 오후, 그리고 야간 훈련이 각각 2시간 30분 정도 진행된다. 훈련과 훈련 사이에는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를 비축하며, 짧은 낮잠을 자는 일도 필요하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훈련을 견뎌낼 수 있는 자만이 국가대표의 무게를 짊어질 수 있다. 훈련으로 실력을 쌓고, 시합에 나가 기량을 발휘하는 것이 국가대표가 감당해야 할 일상이다.
“2018년에 신인 선수 사업으로 처음 선수촌에 입소했고, 2019년부터 지금까지는 국가대표 자격으로 선수촌에 들어와 있어요. 어느덧 운동 경력이 쌓이면서 부상에 대한 걱정도 커졌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30분을 더 당겨서 쓰자는 생각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어요. 약속된 시간보다 30분 일찍 나가서 보강 운동도 하고 몸을 풀려고 해요. 몸 관리를 잘해야 운동선수 생활이 더 길어질 테니까요. 훈련에 시간을 많이 들이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과학적 분석 또한 스포츠 경기의 승패를 좌우한다. 그래서 선수촌의 과학실에서는 경기 영상을 분석하여 선수가 전술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다. 주정훈 선수 역시 경기 영상을 보며 자신의 기술뿐만 아니라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분석한다. 한편 상대 선수 역시 주정훈 선수를 분석하기 때문에 비공개된 기술을 마련해야 대회의 결과가 좋아진다. ‘연결 발차기’가 주특기로 알려진 주정훈 선수가 요즘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는 이유다.
“사실 제 주특기가 연결 발차기라는 생각을 별로 못 해봤어요. 그런데 경기 분석을 해보면 연결 발차기를 했을 때 득점이 많이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감독님도 시합에 들어가기 전에 상대 선수보다 발을 많이 차야 득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해 주세요. 최근에는 회전 공격을 많이 연습해요. 태권도 경기에서 회전 공격이 들어가면 일반 발차기보다 점수를 더 받을 수 있거든요.”
일반 발차기에 비해 뒤차기는 1점을 더 획득할 수 있고, 한 바퀴 돌아서 차는 턴 돌려차기는 4점을 더 획득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회전 공격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주특기를 만드는 중이다. 장애인 태권도는 몸통 공격만 허용되니 상대의 공격을 막는 손이 성한 날이 없다. 또한 주정훈 선수는 특유의 연결 발차기로 점수를 얻는 편이다 보니 대회가 끝나고 나면 진통제를 달고 지낸다.
“경기가 끝나면 걸어 나오는 게 아니라 기어 나온다고 할 정도로 모든 힘을 다 소진한 상태가 돼요. 발이 아파 숙소에서 아주 힘들죠. 외국에서 열리는 경기의 경우에는 한국으로 돌아올 때 비행시간이 길다 보니, 다친 부위가 많이 붓기도 해요. 최선을 다한 대가이니 힘들어도 감내해야죠.”
상대방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맷집을 키우는 연습도 한다. 어떤 선수도 상대의 모든 발차기를 피할 수는 없으며, 특히 체중이 더 많이 나가는 선수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는 쉽게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공격을 받아도 버틸 수 있도록 같이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일부러 발차기를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발차기에 몸이 어느 만큼 소진되는지, 어느 정도를 버텨낼 수 있는지를 예행 연습해보는 것이다.
만 2세 때 일어난 사고
주정훈 선수가 장애를 갖게 된 건, 만 2세 때였다. 당시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쁘셨기에 주정훈 선수는 할머니 댁에서 생활했다. 경남 함안 시골집에서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소여물 절단기에 오른손을 넣어 사고를 당했다. 할머니는 이 사고로 평생 죄책감을 가졌으며, 치매로 투병하다가 2020 도쿄 패럴림픽이 끝난 후인 2021년 세상을 떠났다. 주정훈 선수는 큰 대회를 앞두고는 할머니 묘소를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다.
“할머니는 유년기 때 저를 키워주셨던 분이에요. 늘 미안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지요. 할머니 집에서 다쳤기 때문에 그 일을 계속 마음에 품고 사셨던 것 같아요. 사고는 이미 일어난 거지만 저는 그 사고로 인해 새로운 삶을 더 특별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도쿄 패럴림픽 금메달을 안겨 드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지만, 이번 2024 파리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반드시 할머니 묘소에 찾아가서 인사드릴 거예요. 할머니가 잘 키워주셔서 손자가 이렇게 잘 컸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패럴림픽 태권도는 겨루기 종목으로 절단 지체장애인이 겨룬다. 주정훈 선수가 출전하는 부문은 K44로, 한쪽 팔 장애 중 팔꿈치 아래 마비 또는 절단 장애가 있는 선수가 참여한다. 41등급은 양쪽 팔이 절단된 선수가 출전해왔는데 선수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에 이번 2024 파리 패럴림픽부터는 하나의 부분으로만 치러진다. 양쪽 손목이 절단돼도 똑같이 44등급에서 뛰어야 해서 불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쪽 팔이 없는 선수가 1등을 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경기가 펼쳐질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다
주정훈 선수가 태권도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다. 비장애 친구들과 태권도 실력을 겨루었고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선수였다.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관장님으로부터 선수부 제안을 받고 태권도 선수를 꿈꾸게 되었다. 첫 시합에서는 졌지만 이후 승승장구하며 1등을 도맡았다.
“관장님의 권유로 선수부에 들어가서 시합을 했어요. 첫 경기에서는 졌는데, 시합장에서 먹었던 간식들이 너무 맛있더라구요. 계속 태권도를 하다 보니 경상남도 대회에서 줄곧 1, 2등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형들이랑 경기를 하니까 다시 겸손해졌지만, 그래도 전국 대회에 나가서 8강에도 올라가 봤죠.”
이후 고등학교 2학년 때 태권도를 그만두었다. 20대에는 경영학을 전공하는 평범한 대학생으로 다른 길을 걸어보기도 했다. 그러던 스물셋의 겨울, 또 한 번 태권도와의 인연이 이어졌다. 당시 부모님의 식당에서 일을 도와드리던 주정훈 선수에게 태권도 지도자 한 분이 찾아와 다시 해볼 생각이 없냐며 권유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이와 같은 제안이 몇 차례 계속되자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태권도를 다시 해보자는 얘기를 처음에 들었을 때는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지금의 삶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1년에 한두 번씩 비슷한 제안을 받다 보니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구요. 태권도를 그만둔 지 오래됐는데 과연 선수를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그러던 중 장애인 태권도 신인 선수팀 감독님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셔서 패럴림픽에 장애인 태권도가 생기면 앞으로 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셨죠.”
그렇게 2017년 12월, 주정훈 선수는 다시 태권도복을 입었다. 주변에서도 응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실 부모님은 아들이 다치는 게 마음이 아파 태권도를 안 하길 바라기도 하셨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주셨다. 다시 태권도로 돌아온 주정훈 선수는 국가대표가 되었고, 어린 시절 태권도 선수가 되겠다는 꿈이 이루어졌다. 돌아보면 영화 같은 이야기다.
응원에 힘을 얻어
지난해에는 ‘유러피안 파라 태권도 오픈 챔피언십’ 80kg급에서 당시 세계 랭킹 1위였던 우즈베키스탄 선수를 이겨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한 2022 항저우 아시안 패러게임에서는 무릎 부상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결승전에서 무릎을 부딪혀 주저앉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이겼다.
“2022 항저우 아시안 패러게임에 출전하기 전에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장애인태권도선수권대회에 출전했어요. 결승전 도중 상대 선수의 무릎과 부딪혀 부상으로 기권하게 되었는데, 이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항저우 아시안 패러게임에 출전하게 된 거예요. 만약 똑같은 부위에 또 부상을 입으면 오래 준비해온 2024 파리 패럴림픽이 물 건너갈 수도 있겠다는 부담감도 있었죠. 그런데 시합 전날 감독님이 오셔서 마음을 좀 내려놓으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덕분에 집중해서 경기를 치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