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마음으로 병실문 앞에 섰다.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부터 건네야 할까? 촉망받던 프로 축구 구단 골키퍼에서 음주운전 피해사고로 하루아침에 하반신이 마비된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돌아온 친구의 말에 ‘피식’하고 웃음이 터졌다. “야, 어디 초상집 왔냐? 나 이제 군대 안가도 돼.”
유연수 전 제주 유나이티드FC 선수와 친구의 이야기다. 유연수 선수가 들려준 친구와의 일화는 그가 갑작스러운 사고로부터 불과 1년여 만에 몸과 마음을 회복해 팬들 앞에 설 수 있었던 비결을 들려준다.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의 다친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 언제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긍정성이다. 최저기온이 영하 15도로 내려갈 만큼 극심한 한파가 찾아온 날,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드는 미소를 지닌 유연수 선수를 만났다.
발밑과 킥이 좋은 선수
사람들은 유연수 선수를 ‘발밑을 이용한 빌드업과 킥이 좋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발밑이 좋은 골키퍼란 경기 흐름을 잘 파악하고 어디에 공을 보내야 하는지 아는 영민함이 있다는 뜻이다. 193cm라는 건장한 체격 조건은 아무리 먼 거리라도 정확하게 볼을 보낼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유연수 선수는 “발밑은 모르겠지만 킥은 좀 좋았다”며 웃었다.
선수 시절 그는 실력만큼이나 운도 좋았다. 입단한 첫해에 소속된 팀이 리그 우승을 하면서 K1리그로 승격된 것이다. 그가 선수 시절 치른 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제주 유나이티드FC가 K1리그로 올라와 포항 스틸러스와 치룬 경기다. 팀이 오랜 무승부를 기록하고 있을 때 기존 골키퍼가 다치면서 유연수 선수가 투입됐다. 중요한 경기 경험이 많지 않을 때였지만, 그는 상대팀의 득점을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해 팀에게 오랜만의 승리를 안겼다. 이렇게 좋은 경기력을 보였거나 팀이 우승했을 때 기쁨이 어떤지를 묻는 질문에 유연수 선수는 답했다.
"공부로 따지면 시험을 쳤는데 한 문제도 틀리지 않고 다 맞은 기분 아닐까요? 운과 실력이 모두 따라줄 때만 우승할 수 있는 만큼 정말 쉽게 하기 힘든 경험 같아요. 골키퍼로서는 팀이 실점 없이 승리했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아요."
2022년 10월의 어느 날 새벽. 그렇게나 축구를 좋아하던 유연수 선수가 더 이상 프로 축구 선수로 뛸 수 없게 되었다. 음주운전 차량이 그가 타고 있던 차량을 들이받으면서 가슴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고 당일 저는 차량 3열에 타고 있었어요. 새벽이니까 피곤해서 잠을 자고 있었죠. 주위가 시끌시끌한데 누가 저를 깨워서 일어나보니 가슴 밑으로 움직임이 없고 아무런 감각도 없었어요. 차 밖으로 나가려는데 다리가 안 움직여서 꿈인 줄로만 알았죠. 흉추가 부러져 있는 상황이었는데 정신이 없어서 곧바로 통증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구급차에 타는 순간부터 칼로 찌르는 고통이 20~30분간 지속되었고, 저는 다시 잠들었어요. 그 후 잠에서 다시 깨어나 보니 의사, 간호사 선생님이 보였고 다시 또 눈을 뜨니 저는 중환자실에 있었어요. 그날 일은 이렇게 드문드문 기억나요.”
완전히 달라진 일상
그의 일상이 180도 달라질 것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병실 밖에서 어머니가 주치의 선생님과 대화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주치의 선생님은 ‘연수는 평생 누워있거나 휠체어를 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슬퍼하실 어머니 모습에 유연수 선수는 본인의 일이었음에도 오히려 덤덤한 척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면 부모님이 더욱 힘들어하실까봐. 그래서 유연수 선수는 오히려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날부터 그의 일상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만나는 사람, 가는 장소, 하는 생각... 하나 비슷한 게 있다면 지금도 하루종일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오전 7시 30분이 되면 일어난다. 아침을 먹은 뒤 오전 내내 스트레칭, 로봇 치료, 작업치료, 기립기 연습 등을 쉴새 없이 소화한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나면 또다시 작업치료에 들어간다. 일상생활을 위해 필요한 동작들. 예컨대 휠체어를 타거나 차량으로 몸을 이동시키거나 하는 등의 동작을 연습하고 기초적인 근력운동을 하는 과정이다. 근력 강화를 위해 맨몸운동이 포함된 물리치료도 받는다. 이후로도 전기치료, 통증치료 등 일정이 저녁까지 이어진다. 이 모든 훈련은 유연수 선수의 근육과 뼈가 지금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다.
얼핏 들으니 선수 시절보다 더 타이트한 일상이다. 선수 시절에는 오전, 오후 시간 틈틈이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숙소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지금은 마치 오전・오후 수업이 꽉 찬 대학생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운동과 치료를 완료해 낸다. 이렇게 긴 하루를 보내고 나면 밤 10시. 유연수 선수는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올라가면 비교적 이른 시간임에도 꾸벅꾸벅 졸기 일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성격도 바뀌었다. 원래 그의 성향은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극 ‘P’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친구들과 어딜 놀러 가면 항상 ‘일단 가서 보자’ 식으로 계획을 짜지 않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모든 걸 찾아봐요. 지하철역이 넓은지 좁은지, 장애인 화장실에 몇 층에 있고 몇 개가 있는지, 장애인 주차장은 잘 갖춰져 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예요. 심지어는 지하철과 플랫폼 사이 간격이 얼마나 먼지도 알아보고 가야 해요. 저는 틈이 넓어도 비교적 수월하게 드나들 수 있지만, 함께 다니는 다른 친구들은 움직이기가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자연스럽게 관심사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 관심사는 오로지 축구였다. 하지만 지금은 재테크 기사가 실린 경제 뉴스에도 눈이 가고, 음주운전 사고와 ‘베리어프리’에 대한 소식이 실린 사회 뉴스 등에도 귀가 쫑긋해진다. 생활하면서 직접 불편함을 느끼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직 우리 사회의 장애인 편의시설들이 조금은 더 개선될 지점이 있다고 느꼈다.
“돌아다니다 보면 구색만 갖춘 장애인 화장실도 일부 있어요. 안전바가 변기 바로 옆에 있어야 이용할 수 있는데, 안전바와 변기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는 사용이 어렵거든요. 경사로가 설치되지 않은 곳들도 아직은 많은 것 같아요. 계단이나 턱이 있으면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은 사실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이동이 힘들어요.”
더욱 똘똘 뭉친 가족
그러나 그가 침울한 순간은 아주 잠깐이다. 유연수 선수의 가족과 동료, 팬, 친구들이 무한한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원래부터 화목했던 그의 가족은 사고 이후 더욱 단단히 뭉쳤다. 초등학생 때 축구를 시작하여 중학교 때부터 전국을 누비느라 유연수 선수는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사고 이후에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순간이 거의 없다. 무뚝뚝했던 아들은 부모님과 1년 넘게 함께 지내면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더 자주 표현하는 살가운 아들이 되었다.
기획 : 김주현, 선아
사진 : 홍경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