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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2

[우리 안의 소수] "안내견은 사회가 키웁니다"

  • 바람직한 안내견 문화 정착을 위해 힘쓰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박태진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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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안내견학교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지난 1993년 9월 설립된 이래, 매년 12~15마리의 안내견을 시각장애인에게 분양해 왔다. 안내견학교 박태진 교장은 지난 시간 동안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개선되었다고 말하면서도,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한다. 사회가 안내견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우리 손에 달렸다는 의미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본 적 있나요?


2022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발표한 장애인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체 등록장애인 수는 264만여 명으로 총 인구 대비 약 5.12%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시각장애인의 수는 25만여 명으로, 지체장애(45.1%), 청각장애(15.6%)의 뒤를 이어 9.5%를 차지하는 정도다. 또한, 15세 이상 시각장애인 중에 취업해서 활동하는 인구는 10만 7천 여명으로 고용률은 43.1%에 그친다. 그만큼 시각장애인으로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인구는 극히 적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길에서 안내견을 흔하게 만나보기 어렵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 중에서도 경제활동 등의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분양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현재 활동 중인 안내견이 70여 마리인 이유이다. 그러다 보니 박태진 교장은 “안내견을 더 많이 양성해야 하는 시점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안내견 양성은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의 사회활동과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마리의 강아지가 안내견이 되기까지


안내견이 탄생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신기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이 안내견을 길러내기 때문이다. 안내견으로 길러지는 품종은 대부분 래브라도 리트리버다. 좋은 성품과 건강상태를 가진 개들 중에서 종견과 모견을 선발하여 번식하고, 그렇게 태어난 강아지들은 생후 8~9주 되었을 때 자원봉사자 가정에 1년간 위탁되어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안내견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로, 이른바 퍼피워킹(puppy walking)이라고 한다. 이때 자원봉사자들은 미래에 안내견이 될 강아지를 데리고 지하철을 탄다거나 쇼핑몰에 가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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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아이는 마을에서 키운다고 하잖아요. 안내견은 사회가 키운다고 보시면 됩니다. 안내견 학교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번식도 시키지만, 이 강아지를 어릴 때 키워주는 건 자원봉사자분들이거든요. 시각장애인들이 안내견하고 생활하는 과정에서도 사회의 배려와 도움이 필요하지요. 그러니 사회적으로 성숙되어 있지 않으면 안내견학교를 운영할 수 없을 거예요.”


적합성 종합평가를 거쳐 안내견을 선발하는데, 10마리 중 3~4마리가 합격하는 정도다. 이때 탈락한 개들은 일반 가정에서 반려견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이렇게 한 마리의 안내견이 길러지면 시각장애인 파트너와 만난다. 파트너 매칭은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여 세심하게 진행된다. 


“사람이 그렇듯 개들도 걷는 속도가 저마다 달라요. 그래서 서로의 걸음 속도도 맞아야 하고요. 애정 표현이 많은 걸 좋아하는 개가 있는 반면, 그런 걸 싫어하는 개도 있어요. 훈련사들이 개와 시각장애인, 양쪽의 정보를 가지고 잘 어울릴 만한 쪽으로 매칭을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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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견을 분양받은 시각장애인은 안내견학교에서 2주간 교육을 받으며, 이후 시각장애인의 실제 생활 공간에서 또 2주간 훈련이 진행된다. 안내견학교에는 실제 생활 공간과 비슷하게 꾸며진 방이 있는데, 이 방에서 지내면서 개를 먹이고 입히는 방법부터 배변 후 처리법, 목욕시키는 법 등을 모두 배운다. 이렇게 한 달을 배우면 시각장애인들은 개에 대해 준전문가 수준이 된다. 


안내견들은 대부분 8년 정도 활동하고 은퇴하는데, 이때 자원봉사자 가정으로 위탁된다. 어렸을 때 퍼피워킹을 하며 키웠던 자원봉사자 가정에서 은퇴견이 된 개를 다시 데리고 가는 일도 많다. 그러니 안내견들은 사랑 속에서 길러지고 관심 속에서 활동하며 은퇴 후에도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셈이다.


우연한 만남이 특별한 인연으로

박태진 교장은 약 20여 년 전 안내견학교에 입사했다. 수의학을 전공하고 검역원으로 일하던 중, 안내견학교에서 수의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되었다. 수의학 전공자들은 동물병원을 개원한다거나 대학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안내견학교에 들어온 그의 이력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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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아마 1997년쯤이었을 거예요. 통학을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맞은편에 한 신사분이 안내견을 다리 사이에 두고 앉아계신 거예요. 그때만 해도 저는 우리나라에 안내견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당시에 활동하는 안내견 수가 10마리도 안 되었을 때니까요. 저는 장애인을 돕는 개가 있다는 것도 몰랐고, 개가 지하철을 탄다는 것도 몰랐어요.”


그 장면은 박태진 교장에게 너무나 생소한, 그래서 신선한 충격으로 각인되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개와 사람이 함께 내렸고, 계단을 올라가고, 개찰구를 통과했다. 그 모습이 아주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안내견을 양성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이다. 하지만 안내견학교에서는 좀처럼 모집 공고가 나지 않아 검역원으로 취직하여 일하던 중, 안내견학교에서 수의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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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수의사로 들어왔지만 사실 진료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안내견 훈련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말씀드렸죠. 그때부터 안내견 훈련을 했어요. 제가 훈련을 해서 처음으로 안내견이 된 친구는 파랑이에요. 안내견이 되고서도 활동을 아주 잘했습니다.”


장애인의 사회활동 늘어야 안내견 활동 커질 것

현재 활동하는 안내견은 전국적으로 약 70마리 정도 된다. 지금 시각장애인이 안내견을 신청하면 1년 반에서 2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면 안내견을 더 많이 양성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박태진 교장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 역시 사회의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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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견이 필요하다고 신청하는 시각장애인 중에서 저희가 선발을 하는데요. 신청 조건은 크게 두 가지예요. 첫째는 보행을 혼자 하는데 충분하지 않은 시력, 둘째는 사회생활을 하는가의 여부입니다. 예를 들어서 시각장애가 있고 홀로 보행하기가 어려운데 외부 활동 없이 집에만 계시면 안내견을 분양받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안내견 육성은 장애인 정책과도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정책은 사회활동보다는 생활보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보니, 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가 어렵다. 그래서 안내견을 신청하는 시각장애인 중에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을 다닌다거나 직장에 나간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몇 번은 외출해야 한다. 장애인들도 직업을 갖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길에서 안내견을 만나는 일도 더 늘어날 것이다.


지난 20년 안내견에 대한 인식 긍정적으로 변화해

박태진 교장은 안내견학교에서 근무해온 지난 20년간,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안내견이 사회적으로 너무나 생소한 존재였기 때문에, 안내견을 데리고 나가 훈련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예컨대 훈련사들이 안내견을 데리고 아파트 단지에 가서 훈련하면 주민들이 신고하여 쫓아내는 일이 다반사였고, 택시나 버스를 타기조차 어려웠다. 안내견을 훈련시키는 훈련사와 퍼피워킹을 맡는 자원봉사자, 안내견과 함께 삶을 개척해보려는 시각장애인들 역시 이러한 편견의 문턱에 부딪히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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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정말 많이 바뀌었죠. 예를 들어 버스 기사님이 안내견 승차를 거부하려 한다면 주변 승객분들이 안내견을 태우는 것이 맞다고 얘기해주시는 거예요. 이렇게 안내견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뜻해졌다고 봐요.”


박태진 교장은 사회에 안내견 문화가 잘 정착되려면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안내견 학교, 사회(자원봉사자), 시각장애인 당사자, 정부, 이렇게 네 가지 요소다.


“첫 번째로 안내견 학교가 어떤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운영하느냐는 중요합니다. 개의 복지와 가치를 생각하고 시각장애인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사회의 도움이 필요해요. 강아지를 안내견으로 양성하는 데 있어서 많은 분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특히 자원봉사자분들이 없다면 안내견 학교를 운영할 수 없을 거예요. 세 번째는 시각장애인 당사자입니다. 실제 시각장애인들이 안내견과 함께 생활해보니 정말 좋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안내견 사업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삶이 바뀐다면 정말 의미 있는 일이죠. 마지막으로는 정부 지자체의 역할이에요. 법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안내견 문화가 잘 정착될 수 있거든요.”


2000년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 및 제도 개선을 위해 안내견의 편의시설 접근법을 보장하는 법안이 시행되었다. 장애인이 안내견을 데리고 편의시설을 이용할 때, 이를 거부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었다. 2012년에는 시각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 훈련사 또한 보조견 표지를 붙인 안내견을 동반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여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생겼다.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이들이 만든 변화다.


안내견은 희생하는 개가 아니다

과거에 비해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박태진 교장은 이제 선입견을 깨고 싶다고 말한다. 특히 안내견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삶을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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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교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안내견도 산책하나요?’하고 물어보시더군요. 저는 그 질문을 듣고 너무 놀랐어요. 안내견이 산책을 안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아마 질문을 한 분은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외출을 하면 개가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산책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안내견한테는 시각장애인과의 외출이 곧 즐거운 산책입니다.”


시각장애인이 안내견을 잘 돌보지 못할 거라는 선입견 역시 바로잡고 싶다고 한다. 예컨대 시각장애인이 안내견을 제대로 씻기고 관리할까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있는데, 안내견학교를 통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때문에 보통의 반려인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개를 키우기 위해 기관에 가서 교육 받는 분이 몇 분이나 있을까요? 시각장애인들은 안내견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 한 달 동안 교육을 받습니다. 개와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밥은 어떻게 줘야 하는지, 개가 아플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들을 배우기에 그 누구보다도 개에 대해 잘 이해하지요.”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개 역시도 본능을 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을 돕기 위해 본능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과 함께 즐겁게 생활하는 것이다. 만약 한 번도 지하철역에 안 가본 강아지가 성견이 되어 지하철에 타려고 한다면 몹시 긴장하고 두려워할 것이다. 하지만 안내견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지하철 타는 경험을 한다. 그렇기에 시각장애인과 지하철에 탔을 때도 안정감을 느낀다.


경계 나누기보단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박태진 교장은 안내견을 대하는 에티켓으로 안내견의 사진을 찍을 때는 시각장애인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고, 안내견을 만지거나 부르는 등 관심을 끄는 행동을 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또한 안내견의 건강과 집중력 유지를 위해 먹을 것을 주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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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견학교에서 20년 넘게 일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되게 옅어졌어요.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시각장애인 직원과 같이 근무하는데 저는 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잘 못 느껴요. 안내견을 데리고 출퇴근하고 업무 능력도 아주 뛰어나요. 엑셀은 우리 직원 중에 제일 잘하니까요. 그래서 장애와 비장애, 안내견과 반려견의 경계를 나누어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안내견도 반려견도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면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그러니 둘을 구분 짓고 나누어 생각하기보다는 각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좋을 것이다. 더 많은 시각장애인이 직업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회가 되어, 더 많은 안내견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취재 : 김주현, 남궁소담
사진 : 이용일